지구의 크기와 같은 레고 행성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표준 블록(2*4, 길이 3.2cm, 너비: 1.6cm, 높이 0.96cm)이 몇 개나 필요한지를 계산하기 위해 우선 지구의 부피를 알아야 할 것이다. 지구의 평균 반지름은 약 6,371km인데 구의 부피 공식인 𝑉 = 4/3𝜋𝑟³를 적용하면 공식은 𝑉 = 4/3πr³ ≈ 4/3π(6,371,000m)³ ≈ 1.083 × 10²¹m³가 된다. 너비 1.6cm x 길이 3.2cm x 높이 0.96cm인 레고 표준 블록의 부피는 4.9152cm³다. 이를 m³로 변환하면 약 4.9152 x 10⁻⁶-m³다. 따라서 필요한 블록의 개수는 1.083 × 10²¹/4.9152 × 10⁻⁶, 즉 2.203 x 10²⁶개로 계산된다. 이 수를 풀어 쓰면 220..
"나는 전쟁이 좋다오. 마치 큰 소풍 같잖소." -줄리안 그렌펠 언젠가 스위스 바젤에서 잘 알려진 아트바젤에 들른 적이 있다.그날은 짙은 먹구름이 소나기를 뿌려대 일몰이 다가오기 전부터 일찌감치 깜깜했다.나는 피카소와 엘 그레코가 있는데 뭐하러 굳이 신진 작가의 작품을 봐야하냐며 내심 무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안팎에 엄청난 인파가 있었다.여느 관광지와는 달리 그 광활하리만치 큰 박람회장을 꽉 채운 금발벽안의 유럽인들을 보니 새삼 여기는 이들의 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수묵화로 그린 세상처럼 보이는 바깥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서자 다채로운 그림과 형형색색의 옷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한국에서는 아트페어에 가면 그림을 사고자 기웃거리는 돈 많은 사모님들을 적잖이 볼 수 있는데 보통 이세이 미야케나 구호..
jouissance라는 철학 용어가 있다. 롤랑 바르트와 자크 라캉 둘 다 사용했었는데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자크 라캉의 jouissance는 중화권(sinosphere)에서는 그 의미가 그동안 향락이나 희열로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홍준기가 그의 저서 라캉의 재탄생에서 향유라는 번역을 내세우면서 점차 이 의미로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역시 이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듯 하다. 쾌락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으나 라캉의 철학을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족으로 바르트의 jouissance는 다소 의미가 다른데, 영어권에서 라캉의 것은 enjoyment로, 바르트의 것은 주로 bliss로 해석된다. 위에서 언급한 홍준기는 jouissance의 의미에 ..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 현생 인류가 살고 있는 시대인 홀로세(=충적세)는 지질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온도의 상승/하강 폭이 가장 적고 완만한 시기다. 지구의 온도에 단 몇 도의 변화가 가해져도 해류가 바뀌고 대기 조성이 달라지며 대륙 차원에서 기후가 바뀐다. 당장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에게는 기후 변화가 비극일지는 몰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의 사고 방식에서만 비극에 불과하다. 생물 생태계 입장에서는 그렇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극적인 변화는 모든 생물종의 진화 속도를 가속화시키므로 변화 과정 중에 수많은 동식물과 균류가 죽어나가더라도 짧은 과도기를 거치는 것일 뿐이다. 종국적으로는 변화에 잘 적응한 진화를 적절하게 마친 생물에게는 새로운 번성과 기회의 시대..
폴 크루그먼이 2022년 7월 21일자로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I Was Wrong About Inflation을 번역하였습니다. 원본 출처: https://www.nytimes.com/2022/07/21/opinion/paul-krugman-inflation.html Opinion | I Was Wrong About Inflation Some economists warned that the American Rescue Plan would be inflationary. Others, like me, were fairly relaxed. www.nytimes.com 2021년 초, 새 민주당 대통령과 (간신히) 민주당 의회가 제정한 1조 9,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에서의 구제안의 결과가 야기할 결과를 두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의 겨울은 그렇게 혹독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던 빌라 단지 정문을 나서서 백화점으로 걸어가는 동선에 개미로 뒤덮인 길이 하나 있었는데 사시사철 개미들은 거기서 분주했습니다. 그들을 죽이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발을 디딜 틈이 없어 그 길을 지날 때면 필연적으로 많은 개미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겨울의 혹독함은 아무래도 괜찮을 정도로 녹록치 않습니다. 각설하고 성경에는 생명나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선악과와는 달리 생명나무에서 열리는 생명과는 먹으면 영생을 얻게 된다고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승에서 그 역할은 보다 포괄적으로 묘사됩니다. 지구상 어딘가에 멸종의 전당이라는 곳이 있으며 그곳에서 생명나무는 처음 뿌리를..
놀이동산에 가면 놀이기구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지겹도록 오랜 시간을 기다립니다. 저는 경험상 한 시간 반 가량 기다린 적도 적지 않습니다.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놀이기구에 탑승하고 벨트를 고정하고 갑작스러운 상승 또는 하강을 하는 동안 온몸을 움켜쥐는 스릴과 흥분. 지금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나 그 당시의 기분이 어땠는지, 중력을 거스르면서 또는 중력가속도 이상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신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낼 것입니다. 저는 유명한 국내외 놀이동산을 여러 곳 가보았습니다. 개중에는 사나흘을 돌아도 모자랄 정도의 거대한 놀이동산부터, 이용료를 거의 40만원에 구입할 정도로 비싸고 호화스러운 테마파크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연 최고는 월미도였습니다. 우중충하고 솔..
여름이 다가오면서 집 소파에서 풍기는 냄새가 점점 더 심해진다.평소에 소파에 뒹굴 때에는 일어나기가 귀찮아 소파에 오줌을 자주 쌌기 때문이다.패브릭 소파라서 흡수가 잘 되는 건 다행인데 냄새가 새어나오는 게 단점이다.이 큰 가구를 바꾸자고 진작에 마음 먹었어도 소파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상반신 마비인 내 입장에서 쉽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나는 Things라는 할 일 관리 앱을 하나 쓰고 있다.앱에다가 리스트를 하나 추가해보았다. □ 소파 바꾸기 이렇게 소파를 바꿔야 하는 일거리가 내 할 일 목록에 추가되었다.집에서는 소파가 쉴 새 없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나는 이 앱을 사용할 때마다 “소파 바꾸기” 리스트를 보면서 소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그러면서도 바꾸기가 영 귀찮게 느껴진다. 왜..
짱깨폐렴 재확산을 기념하며 신딴쪽방 신규 점조직원을 모집합니다. 선착순 단 4천명만 절찬리에 모집합니다. 카카오톡에서 단톡방으로 운영되므로 카카오톡 아이디 porahi 등록 또는 본 포스팅 댓글을 통해 문의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중급자 이상부터 권장*** ***과정 중 다른 파일을 건드리면 맥 사용 중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거나 구동 불가 상태가 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재설치를 대비하여 타임머신을 통한 백업은 필수*** ***펌웨어 암호가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펌웨어 암호는 까먹으면 안된다.*** ***더 간단한 방법을 알아내신 분들은 제보해주세요.*** ***assets.car 파일이 코어 서비스에 위치한 상태에서 수정하는 방법을 아는 분들도 제보해주세요.*** 1. 재부팅한다. 재부팅이 시작되자마자 [command] + [R] 키를 계속 누른 상태에서 복구모드에 진입한다. 펌웨어 암호를 입력한다. -펌웨어 암호창이 뜨지 않고 계정 선택 화면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펌웨어 암호를 설정한다.- 관리자 계정을 눌러 비밀번호를 ..
1. 바꾸길 원하는 배경화면을 찾아서 바탕화면이나 아무 폴더에 넣어둔다. 2. 배경화면 파일의 이름을 Catalina.heic로 변경한다. 변경 불가 메시지가 출력되는 경우, 미리보기(Preview)로 열어 메뉴의 파일(File)-내보내기(Export...)로 들어가 형식(Format)을 변경 후 저장한다. 저장 후에 확장자가 바뀌지 않았다면 바꿔준다. 참고: 해상도가 작은 그림 파일은 모니터 해상도에 맞춰서 늘려지는 방식으므로 해상도에 맞는 파일이 좋다. 단색의 경우는 해상도 무관하다. 3. 파인더를 연다.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s) 카테고리에서 유틸리티(Utilities) 폴더를 찾아서 연다. 디스크 유틸리티(DIsk Utility)를 실행한다. 카테고리에서 Macintosh HD를 선택하..
곧 괜찮아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바람과 크게 달랐습니다. 마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사람들의 숱한 만남의 뒤에는 짱깨폐렴이 늘 따라다니며 점점 더 많이, 더 멀리 퍼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동네 주민이 짱깨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은 얼마 전만 해도 저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었죠. 짜파게티를 먹을지 짜짜로니를 먹을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989년의 쌀쌀한 가을, 부모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갔다가 원숭이 두 마리가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에게 저들이 왜 서로 껴안고 있는지 물었죠. 부친은 “추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모친은 “따뜻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대답처럼 원숭이들은, 날씨가 “추워서”, 그리고 체온이 “따뜻해서..
일본 홋카이도 남동쪽 고지대에는 인구 16만명의 작은 도시 오비히로가 있습니다. 개썰매로 유명한 곳이죠. 1956년 일본은 개썰매를 이용해 남극 탐험의 첫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썰매와 개들을 그냥 두고 돌아올만큼 탐험은 혹독했습니다. 몇 년 뒤 다시 일본인들이 남극에 갔을 때, 개들 중 두 마리가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그 개들은 일본의 영웅이 되었고, 점차 개썰매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하게 되었죠. 저는 훗카이도에 머물던 어느 날 늦은 저녁에 오비히로의 작은 야타이에 들렀습니다. 손님 중 하나인 노신사와 노신사만큼 나이 든 야타이 주인이 서로 하이쿠를 주고 받더군요.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지만, 노신사는 일본색이 짙은 발음이지만 꽤 간결하고 유창한 영어로 그 의미를 나에게 설명해주었습..
12월 6일 금요일 제헌절부터 12월 9일 성모무염시태 축일까지 여는 주요 상점들. 메르까도나 mercadona 토요일을 제외한 일요일과 공휴일은 무조건 닫는 마트. 6일 금요일 폐점 7일 토요일 정상 운영 8일 일요일 폐점 9일 월요일 까딸루냐 지방은 운영, 마드리드 지방은 폐점 리들 lidl 6일 금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 단축 운영 7일 토요일 정상 운영 8일 일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 단축 운영 9일 월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 단축 운영 까르푸;까레푸르 carrefour 6일 금요일부터 9일 월요일까지 정상 운영 알깜뽀 alcampo 6일 금요일 정상 운영 7일 토요일 정상 운영 8일 일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 단축 운영 9일 월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 단축 운영 엘꼬르떼잉글레스 el c..
우유배달 아주머니께, 저는 테멋씨의 셋째 아들의 이질을 치료한 적 있습니다. 피부에서 자란 세균성 이질을 염소로 소독했던 단순한 일이었는데 어느새부터인가 사람들은 저를 마녀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종교재판으로 나무 등걸에 묶여 불에 타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침부터는 우유를 놓지 말아 주세요.
빗방울이 마른 땅을 적실 때,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는 왠지 모를 상쾌한 흙내음. 이를 바로 페트리코라고 부릅니다. 토양세균 중 하나인 방선균이라는 세균이 물과 만나 분해 되어 공중으로 퍼지는데 이때 분해되어 나온 물질이 지오스민이라는 물질이자, 흙냄새의 정체인 것이죠. 지오스민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안전한 물질인데, 우리는 지오스민 냄새를 맡으면 대단한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대자연의 품에 안긴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 특유의 작용 때문에 조향사들이나 포도주 주조사들이 종종 사용하는 향이기도 합니다. 공기 중에 5ppt(part per trillion)만큼의 지오스민만 있어도 인간은 그 냄새를 감지 할 수 있는데, 이는 물로 가득 채운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에 한 방울도 채 되지 않는 양 밖에 되지 않습..
1998년 9월 18일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기 하루 전날이었다. 티비에서는 20세기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폭풍 피해를 입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소식이 일주일째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서너 번 연거푸 샴푸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평소와 달리 그녀는 옷을 벗지 않고 나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누워있었다. 나는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뭔가를 말하려 하다가 이내 잠자코 있기도 하고 무언가 시큰둥해 보였다. 그러다 대뜸 나에게 왜 이탈리아인들에게 당하고 있느냐며 화를 냈다. 그날은 같은 학교 재학생이었던 이탈리아인들이 내 정수리에 침을 뱉었던 날이다. 다음 날 축제가 시작되고 저녁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길거리 곳곳에는 성행위를 하는 커플들과 공원에서 옷을 벗고 자는 사람들과 자신이 먹은 것..
나는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6년에 걸쳐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통에 시달렸다. 희한하게도 두통은 거의 정확히 오전 9시에 시작해서 9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오후 6시에 끝났다. 두통은 때에 따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정도로 심해서 그 나이에 배운 어설픈 욕설들을 큰소리로 외치기도 하고 내 스스로의 인생을 저주하기도 했다. 당시에 키우던 복이라는 개는 며칠간 가출을 했다. 어디 자동차 타이어에 비비적댄 건지 숯검댕이가 되어 돌아왔는데, 발정기가 되어 잠시 남자친구를 사귀다 돌아온 것이다. 복이는 나처럼 허약하여 여러 병을 지니고 있던 친구였던지라 복이가 나가있던 사이 며칠을 걱정했는지 모른다. 배가 부르더니 어느 주말 대낮에 출산을 시작했다. 힘을 주다가도 체력이 모자라 처음으로 나오던 새끼의 머리가 걸려..
1. 인도에서는 코브라가 인간을 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총독부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코브라를 잡아오면 포상금을 내리도록 했다. 그러자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냥꾼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총독부에서는 머지않아 코브라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책이 시행된지 몇 년이 지나도 사냥꾼들이 잡아오는 코브라의 수는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났다. 총독부가 그 이유를 알아보니, 처음에는 코브라를 직접 사냥하던 주민들이 나중에는 집집마다 코브라를 포획하여 사육해서 길렀던 것이다. 결국 총독부에서는 코브라 제어정책을 포기했는데, 주민들이 코브라를 모두 풀어버리는 바람에 코브라의 수는 이 정책을 시행하기 전보다 수십 배로 늘어났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시행했지만 ..
어제는 마차를 끌고 목초지를 지나다가 해가 저물어 길 한켠에서 비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을 데울 땔감이 없어서 마차에 불을 지펴 밤을 따뜻하게 지새웠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나방과 날벌레들이 불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는 상념에 잠겼습니다. 생각해보면 동물들의 자살은 굉장히 빈번하게 있어왔고 저 또한 그런 자살들을 수도 없이 목도해왔습니다. 오목눈이나 참새 따위가 고속도로 갓길 가드레일에 앉아있다가 차가 지나갈 때 날아들어 일부러 치여 죽거나, 고양이 토끼 사슴 등은 적지 않은 수가 차에 뛰어들어 터트려져서 숨진다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 보통 고속도로를 자동차로 두어 시간 주행하면 수천마리의 벌레들이 앞유리와 양 사이드미러와 범퍼에 피떡갈비로 죽어있습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을테..
친애하는 세실 양에게, 저는 제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만갈 판데이를 꼽습니다. 영국인 장교를 구해낸 세포이인 만갈 판데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어리석은 종교적 신념이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유지하며 항쟁이라는 미명 하에 사실상 폭동을 일으킨 쓰레기라는 중요한 메시지와, 막강한 영국군의 무차별적 진압과 폭정에 의해 세포이들이 무너지는, 힘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국군은 세포이들을 진압하면서 총을 사용합니다. 총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방식은 화염방사기와 유사했고 유산탄을 섞어 쏘기도 했습니다. 화약과 총을 발명한 중국은 여러 단점과 약점을 보완하고 살상력을 개선해가면서 압축 가스 내에 질산염 비율을 높여 폭발력을 증강시켰고, 900년대에 처음..
종말론으로 온세상이 시끌벅적했던 1999년, 나는 그녀와 약혼했습니다. 동화책 삽화가였던 그녀는 고양이와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밝고 화사한 색채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리던 여인이었습니다. 긍정적인 그녀는 종말론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죠. 그해 8월, 종말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극에 달했고, 티비에서는 폭동과 소요 사태 혹은 집단 자살 등의 사건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상점들이 약탈을 당한다는 뉴스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우리는 한적한 섬에서 평화로운 휴가철을 맞이했고 아무래도 저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어느 날에는 골든아워부터 늦은 밤까지 해변가 작은 공원 잔디밭에 함께 누워 무수히 많은 별들을 우리 눈 앞에 둔 채 행복한 ..
나는 최근 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 추정되는 이라크 사마와 지역의 유적지에서 시리아와 쿠웨이트까지 가로 지르는 직경 7미터짜리 송유관을 수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량이 무려 시간당 17300 입방미터에 달하는 말도 안되는 양의 석유를 끊임 없이 흘려보내는 송유관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석유 소비량은 매일 꼬박꼬박 1억 배럴 안팎입니다. 이 엄청난 소비량 이상의 석유가 시추되고 어디론가 송유되며 팔려나가고 소비되는 항상성, 이해가 되는지요? 송유관을 따라 걸으며 저는 어딘가 이빨이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시리아까지 도달해있더군요. 석유라는 것은 끊임 없이 시추되고 있습니다. 언제는 곧 고갈될 것처럼 연일 보도하더니 채산성이 급격히 늘어난 현재에 ..
1. 말은 대각선 뒤를 고개 돌리지 않고도 볼 수 있어서 상대를 죽이고 싶을 때에는 머리를 정확히 노리고 발길질을 한다. 실제로 미국의 한 목장주는 말에게 얼굴을 채이고 이마부터 광대뼈까지 함몰 정도가 아니라 가루가 되었다가 겨우 살아난 적이 있다. 2. 뉴욕의 시민들은 꽤 오래 전부터 아침 식사로 단풍 시럽과 버터를 곁들인 와플과 튀긴 닭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3. 일본에서는 1971년 검은깨를 락스에 탈색시켜 더 비싼 흰깨로 팔아먹은 식품 사기가 있었다. 추후 관련 문제를 막기 위해 후생성에서 락스 제품들에 참깨에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를 표기하도록 하였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락스통의 주의사항에는 참깨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표기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 후생성 지침에서는..
시리아 알레포를 떠나 터키 가지안텝에 도착한 것은 보슬비가 내리던 한밤중이었다. 늦은 시각에 들른 호텔의 카페테리아에는 가지안텝의 그 흔한 타르흔이 남지 않아서 항아리 케밥조차 못만든다고 했다. 시샤는 있어도 석탄도 남은 게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시킨 커피마저도 너무 태운 나머지 불쾌할 정도로 썼다. 카페테리아의 그 남자는 재료가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나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어설픈 영어로나마 가능한 모든 말을 열심히 쏟아냈다. 인근 식당에서는 베이란이라는 육개장과 아주 비슷한 국밥을 팔고 있었다. 다행히 한참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길을 오가는 청년들의 눈매는 비 때문인지 더 지쳐보였다. 알레포에서부터 여행 욕구를 반쯤 잃은 채 뮌헨으로 돌아갈 항공편을 알아보던 차에 도착..
기원전 7세기, 고대 신바빌로니아 칼데아 왕조의 2대 왕, 느부갓네살은 아시리아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멸망시킵니다. 이후 해당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홀로페르네스 총사령관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합병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받잡고 13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출정합니다. 바빌로니아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직선거리 600 킬로미터. 홀로페르네스 장군이 바빌론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에 도달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곳곳에 존재했었습니다. 여러 왕국들과의 장기간 전쟁도 치르며 이스라엘까지 당도하던 길목의 모든 왕국도 점령했습니다. 직선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지형 문제는 그렇다 쳐도 당시 바빌로니아의 명성? 악명? 앞에 장기간 전쟁에 돌입하거나 농성을 할만한 배짱 좋은 왕국이 과..
그런데 앞으로 기차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매시간마다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이번에도 역시 “다음 정차는 없습니다” 였습니다. 내릴 수 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서둘러 뛰면 내릴 수도 있었지만, 어느 새 귀엽고 조그만 것이 제 다리를 붙잡고 저를 올려다 보고 있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뛸 수가 없었습니다. 옆 자리에는 나이가 여든이 다 된 노인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답답하여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제는 아예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저같은 사람들이 자기 나이가 되면 그때 타협하게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언젠가 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독주를 입에 머금고 불을 붙여 뿜어대는 등 온갖 난동을 부렸습니다. 객실칸은 반쯤 불탔는데 그래도 기차는 멈추지 않더군요..
국제 방사선 방호위원회가 최근 입수한 렉터 박사의 서신에는 토륨 방사선 동위원소가 다량 포함되어 있었는데, 장당 무게 4.5그람 정도의 일반적인 A4 용지 7장으로 구성된 문서가 총 30그람 남짓의 물질이 지닐 수 있는 최대량의 토륨을 지니고 시간당 220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을 방출하고 있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상주 우주인이 일년간 피폭되는 총 방사선의 열배를 넘기는 수치였죠. 방사능 물질이 체내에 들어가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로서, 방사선은 방사형으로 지속적으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체외에서 피폭이 된다는 것은 나노미터에서 10^-10미터 단위의 초미세탄을 개틀링포 수천 대로 집중포화 맞는 것과 같습니다. 두 경우 모두 감마선이 지나간 모든 세포와 유전자에 나노단위의 구멍이 나게 되죠. 방사선은 고에..
자연의 질서가 무너질 때, 새, 개, 사람 등등에게서 평소에 잘 나타나지 않는 기이한 무리 행동이나 먹이사슬이 외부의 간섭 없이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세상에는 최근 들어 그러한 현상들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편적 음모론이 기정사실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요?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사회적 질서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을까요? 박근석(59, 중학생) 씨는 대체로 밤 열 시에는 침대에 눕지만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이란 람사르에 다녀온 후부터 휴대폰 밧데리가 빨리 닳아서 근심과 걱정이 끊이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벽 세 시에야 겨우 잠들고 오후 두 시에 일어납니다. 중간에 오전 열한 시 정도면 잠깐 일어나 가득 찬 방광을 비우고 다..
개라는 동물은 늑대와 그 조상을 같이 합니다. 최소 1만 5천년 전에서 길게는 4만년 전부터 -자의든 타의든- 인간과 공생의 길을 택한, 그리고 현재 늑대로부터 이종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는, 그러나 아직은 완전한 종 분화를 겪지 않은 아종이죠. 개는 인간의 감정을 읽고 인간을 따르도록 기질 자체가 바뀌어왔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져 온 게 아닌 야생성을 그대로 보존해온 동물이므로 인간을 맹종하지 않습니다. 개는 지 어미년과도 붙어먹는 콩가루 혈통이지만, 늑대는 평생을 단혼제로 살아갑니다. 개는 주인을 온전히 주인으로 섬기고 따르지만 늑대는 주인을 주인이 아닌 리더로 여깁니다. 서열이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에는 항상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합니다. 리더를 따르다가도 리더를 쓰러트리고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