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마차를 끌고 목초지를 지나다가 해가 저물어 길 한켠에서 비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을 데울 땔감이 없어서 마차에 불을 지펴 밤을 따뜻하게 지새웠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나방과 날벌레들이 불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는 상념에 잠겼습니다.
생각해보면 동물들의 자살은 굉장히 빈번하게 있어왔고 저 또한 그런 자살들을 수도 없이 목도해왔습니다.
오목눈이나 참새 따위가 고속도로 갓길 가드레일에 앉아있다가 차가 지나갈 때 날아들어 일부러 치여 죽거나,
고양이 토끼 사슴 등은 적지 않은 수가 차에 뛰어들어 터트려져서 숨진다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
보통 고속도로를 자동차로 두어 시간 주행하면 수천마리의 벌레들이 앞유리와 양 사이드미러와 범퍼에 피떡갈비로 죽어있습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을테니 적어도 곤충들은 현명합니다.
서열에서 뒤쳐지고 살아가기 고된 동물들에게는 고속도로가 자살 성지인 셈입니다.
개들은 체급이 큰 다른 동물들은 물론 인간에게까지 호전적으로 시비를 자주 걸어 결투를 통해 명예로운 죽음을 맞는 동물입니다.
그런 것 또한 자살의 일환으로 봐야 할까요?
개들은 대체로 크게 짖으며 다른 동물이나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싸움을 거는데, 이때 끊임 없이 짖는 것은 ‘야이 시팔련아 개새기야 좆같은 새기야 창년의 개아들새기야’ 따위의 욕을 계속해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 입장에서 조금 의역을 해보면 ‘나는 너를 패죽이고 싶으니 너도 나를 패죽여봐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휴게소에서 고양이와 싸우다가 죽은 치와와의 유령을 차에 태워서 집까지 와버린 적이 있습니다.
휴게소 유령을 태웠으니 그건 더이상 휴게소 유령이 아니겠지요.
저는 동물 애호가로써 그동안 다양한 동물들을 보살펴 왔습니다.
도마뱀, 물고기, 개, 새, 고양이 등등.
그리고 그 동물들은 주로 음식을 거부하는 방식의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마지막으로 기르던 고양이는 5층 높이에서 창을 통해 투신했습니다.
시신의 행방을 찾을 수 없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자살 미수에 그쳤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전에 키우던 동물들 중에서 고양이가 죽으면, 저도 박근석(49) 씨와 마찬가지로 보통 가슴살만 구워먹고 쓰레기 봉지에 넣어 버렸고, 개는 소주로 담궈서 몸에 흡수시켰습니다.
평생을 함께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제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한 동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경찰과 시비가 붙어서 멱살 잡고 싸우는데 고양이가 말리길래 홧김에 벽에 집어던졌는데 산산조각 난 적이 있습니다.
반 정도 날아간 머리통 붙잡고 밤새도록 오열했었지요.
어린 시절 기르던 흰 개는 음식에 예민하여 자꾸만 저를 위협했는데 보통 콧잔등이나 머리를 때려서 길을 들였습니다.
그럴 때는 힘을 잘 조절해야지 안 그러면 뇌수가 흘러나오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 불쌍한 개를 위해 국가에 국장을 치러달라고 요청했지만 안타깝게도 기각되었습니다.
각설하고, 개나 고양이의 제자리는 개집이나 침대 위, 사람 무릎 위, 노트북 위가 아닙니다.
냄비 속입니다.
자기 자리를 아는 동물은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동물이므로 힘으로 강제하여 그것을 깨닫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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