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으로 온세상이 시끌벅적했던 1999년, 나는 그녀와 약혼했습니다.
동화책 삽화가였던 그녀는 고양이와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밝고 화사한 색채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리던 여인이었습니다.
긍정적인 그녀는 종말론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죠.
그해 8월, 종말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극에 달했고, 티비에서는 폭동과 소요 사태 혹은 집단 자살 등의 사건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상점들이 약탈을 당한다는 뉴스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우리는 한적한 섬에서 평화로운 휴가철을 맞이했고 아무래도 저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어느 날에는 골든아워부터 늦은 밤까지 해변가 작은 공원 잔디밭에 함께 누워 무수히 많은 별들을 우리 눈 앞에 둔 채 행복한 미래를 그렸습니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처럼 행복 역시 가만히 두더라도 우리에게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었고 말입니다.
그녀가 아끼던 고양이는 쥐를 자꾸만 물어왔는데 그녀는 고양이가 삐질까봐 저는 매번 햇반이랑 쥐를 같이 먹었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백여마리를 물어온 적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루 동안 그만큼을 잡을 수 있는지 미행을 해보니, 놀랍게도 고양이가 애를 쓰며 쥐를 잡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풀밭에 앉아있을 때 수십마리의 쥐가 고양이의 품으로 파고들더군요.
고양이는 아무런 체력 손실 없이 그저 물어다 갖고 오기만 한 셈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큰 불행이 우리에게 닥쳐왔습니다.
그녀가 고양이의 털을 골라주다가 고양이가 그녀의 손을 깨물었습니다.
망치로 머가리를 깨트려 죽이더군요.
피가 이리저리 솟구치면서 거실과 그녀의 얼굴을 시뻘겋게 뒤덮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어 며칠 동안, 정쌍녀 할망구네 국밥을 먹고 싶다는둥 병신같은 소리들을 뇌까리다가 뇌염으로 발전했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나는 그녀를 심폐소생술로 가까스로 살려냈지만 그녀는 산소공급 부족으로 인해 중증 뇌성마비까지 걸리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을 같이 보내기는 커녕 그녀는 말을 스스로 할 수도, 남의 말을 알아쳐먹을 수도, 그렇다고 침 흘리는 것 말고는 움직일 수도 없게 된 상태라 시체떡을 치는 것 말고는 더이상 뭔가 같이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급기야 가만히 있어도 후장에서 똥이 줄줄 세어나오다 보니 그게 구녕 속에 들어가 감염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단어를 찾아볼 것도 없이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절망감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죠.
저는 왜 이렇게 더럽게 운이 없는지 한동안 한탄하다가, 과학자로써 채득해온 직업적 사명감 덕분에 이성을 차렸고, 고양이의 혈액이 야기할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접근을 해보았습니다.
보통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설치류에서 행동 양상이 변하는 현상이 도드라집니다.
설치류는 고양이의 소변 냄새만 맡아도 도망갈 정도로 고양이에 대한 공포감이 매우 강한데 톡소포자충은 쥐의 소뇌편도에 자리잡아 다른 감정은 그대로 두면서 고양이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려 고양이 소변이 뿌려진 곳에 더 자주 접근하는 등 고양이에게 먹힐 확률이 더 높아지도록 행동이 변하는 사실이 90년대에 시행된 연구를 통해 관찰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기전은 아직까지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로, 근래 들어 분자생태학 학자들은 이 톡소포자충이 숙주에의 유전자를 메틸레이션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발현시키거나 변형시키는 것으로 가정을 하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톡소포자충이 그 이상으로 독특한 이유가 있습니다.
설치류 뿐만 아니라 고양이와 인간의 경우도 설치류와 마찬가지로 아르기닌 바소프레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더 많이 분비되어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계속 보고되기 때문입니다.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은 많지만 인간까지 영향을 끼치고 일부 조종이 가능하다는 점이 많은 반향을 낳았죠.
플레그르라는 체코의 학자는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 한가운데에 서있었거나, 총격전이 일어나도 태연했다거나, 공산당의 명령에 불복해 감옥에 갈 뻔한 자신의 이상 행동에 의문을 품다가 개미를 조종하는 창형흡충에 관한 연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련의 연구를 통해 자신이 이상 행동이 톡소포자충의 조종 때문이라고 주장했죠.
주류 학계에서 그는 처음엔 정신병신 취급을 받았지만 체계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자 당연히 이를 검증하기 위한 후속 연구가 시행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은 교통사고 발생률이 2.6배 더, 자살률이 유의미하게 높으며, 감염된 남성의 경우는 친구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플레그르의 주장 뿐만 아니라 톡소포자충이 조현병의 위험인자라거나, 톡소포자충 감염자는 고양이 냄새를 더 좋아한다는 연구가 발표 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틀 내내 끼니도 걸러가며 극도로 격앙된 채 수음과 빠구리를 반복하다가 극심한 허기에 정신을 차리고 치킨을 주문했습니다.
한 마리는 저녁에 먹고 다른 한 마리는 다음 날 식은 맛으로 치밥하려는 요량으로 두 마리를 시켰죠.
어디선가 고양이가 들어와서는 치킨을 먹는 저를 한참 쳐다보기에 한입 드시라고 갖다댔더니 냄새만 맡고 도망가버렸습니다.
가거나 말거나 혼자 한 마리를 다 먹고 남은 건 한 켠에 쟁여뒀는데 다음 날 아침에 식은 치킨을 먹으려고 보니 니미 시발 한 마리를 고양이가 다 처먹었더군요.
이 개시발새기가 단무지랑 파절이는 바닥에 다 개판으로 흘려놓고 말입니다.
호되게 꾸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던 고양이가 똥을 싸기 시작하길래 그 순간 그 상태로 밟아서 똥과 함께 척추를 으깨버렸습니다.
이후 저는 거액의 사비를 털어 고양이 멸종 연구소와 국제 멸종부대를 출범시켰습니다.
펄럭거리는 자기들의 불고기 보지는 아랑곳 않고 별 좆도 상관 없는 고양이들에게 밥주러 다니는 캣맘들을 위해 고양이의 뇌낭종과 혈액으로부터 추출한 톡소포자충을 모아 살포시키기도 했고, 고양이들 밥통마다 타이레놀을 섞어주기도 하거나, 야밤에 학교 운동장같은 데서 휘발유나 신나를 한 바가지 끼얹고 몸에 불 붙여서 풀어놓기도 하고, 타다 남은 사체는 흙먼지 탈탈 털고 깨끗이 씻긴 다음 솥에 넣고 끓여서 하나가 되었구요.
보이는 족족 대퇴골이 탈골 될 정도의 풀스윙으로 걷어차 죽이는 등 쉴 새 없이 온세상을 누비며 멸종 운동가로 활동해왔습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이에 감염이 된 캣맘들에게서 자연적으로 파괴되는 뇌세포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천연두에 항체가 없는 캣맘들은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았고 치매유병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세계 모든 기관, 학교, 기업에서 연구 중인 영생 프로젝트의 한 가지 공통된 문제점은 체세포 텔로미어의 길이를 고정 혹은 연장시켜 젊음을 유지할 수는 있으나 뇌세포 파괴만큼은 막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보통 체세포에 대한 동시다발적 텔로미어 연장에는 프로악티늄 231과 산화란타넘 방사선을 피시술자가 쬐게 되는데 이후에 외모는 젊은 상태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연노화를 겪은 뇌는 늙을대로 늙어 결국 건강한 신체 상태임에도 뇌사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톡소포자충은 뇌세포의 수명마저도 역전시켜 문제를 쉽게 해결해주었죠.
댄지어스 박사가 양치식물과 암컷 늑대를 발견한 타이밍으로 봤을 때 톡소포자충의 작용에 관한 발견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갑작스럽게 도둑처럼, 아니 도둑고양이처럼 여러분을 찾아간 셈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사고체계가 단순해서 장수하는 거북이나 영원히 체세포를 재생시키는 영생 해파리 따위를 연구합니다.
수명이 짧은 숙주지만 그것과 공생하는 미세생물에는 관심을 크게 둔 적이 없었죠.
저에게는 철천지원수였던 고양이였지만 결국 인류에게는 역사를 바꾸는 존재가 되었군요.
이로써 제 오랜 숙원이었던 고양이 멸종 프로젝트를 철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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