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삼성 리움 미술관 ,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 국립미술관, 영국 런던 테이트 현대미술관, 일본 도쿄 모리 미술관, 미국 아칸소주 벤튼빌 크리스탈 브릿지 미국 미술관, 카타르 도하 국립 컨벤션 센터를 포함하여 스페인 빌바오에 영구 설치되어있다. 그외 미국 뉴욕시 록펠러 센터, 네덜란드 헤이크 시청,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외 많은 곳에도 임시 설치된 작품이다. 프랑스계 미국인인 뤼즈 부르주아;루이스 부르주와가 36살에 처음 드로잉을 했으나 87살이 되었던 1999년부터 설치했다. 모든 지역의 마망은 동일한 9.3미터 높이와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청동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하고 배 부분의 철제 속에는 32개의 대리석으로 만든 거미알이 들어있다. 1999년에 제작된 첫 작품은 영..
왕너구리의 메세타 고원에 불 붙이기/미술관조깅 (예술)
고등학교를 입학할 무렵까지 사도 바오로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예수를 생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음에도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유지하며 여러 서신들을 통해 많은 지역에 초기 그리스도교가 자리 잡는데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이었다. 어거스틴은 바오로가 쓴 로마서 중 3장 12절을 읽고 회개하여 새 삶을 찾았다.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을 읽고 위대한 복음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의 원천으로 삼는다. 칼빈, 요한 웨슬리, 칼바르트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오로의 서신을 통해 은혜를 받는다. 로마서는 물론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카 전후서에 등장하는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속성은 범재신론자인 나에게 굉장한 흥미를 돋군다. 바오로의 교회관과 은사, 방언, 선교, 기도, 종에 대한 신학적 분석 등. ..
1. 막간의 유딧 소개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유딧;유디트는 실존했던 인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아시리아의 한 장수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낸 일종의 구국영웅으로써 천주교와 유대교에서는 유딧기라는 장을 빌어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간주하여 구약성경에서 제외되었다. 다만 유대교에서도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외경,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에서는 정경이다.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연회에 참석한 유딧. 1634년 작. 프라도 미술관 소장. 프라도가 소장하는 유일한 렘브란트의 그림이다. 렘브란트 시대의 이상적 여성상처럼 적당한 살집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죽은 남편을 태운 재를 마시는 아르테미스 여왕으로 추정해왔지만 2009년에 프라도 미술관 연구소에 의해 유딧으..
1936년 7월 18일, falange팔랑헤당을 필두로 왕당파, 파시스트, 까를리스타, 이탈리아, 포르투갈, 나치 독일 등이 연합한 국민군은, 프랑코의 측근인 에밀리오 몰라 장군의 지시에 따라 모로코에서 반란을 일으켜 본격적인 스페인 내전이 발발합니다. 1937년 3월 7일, 나치 독일은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재해석하여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당시 스페인의 장군이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원하고자 콘도르 사단을 스페인에 파병합니다. 동시에 하에51 복엽 전폭기가 주력 진격 공군으로 파병군과 함께 투입됩니다.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도시인 게르니카에 주둔했던 공화파 바스크군의 20여개 대대가 서남쪽으로 후퇴 중이었고 이를 프랑코파 군대가 추격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코, ..
1800년 전후로 나폴레옹 황제는 전유럽을 통치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야망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수출이라는 원천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유지하던 영국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압박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리스본 무역항을 폐쇄시켜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페인 영토를 지나야 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에게 길을 내주면 포르투갈을 점령해 영토를 분할해주겠다고 회유합니다. 한편 영약한 왕세자였던 페르난도 7세는 아버지인 까를로스 4세를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집요하게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까 를로스 4세는 어차피 민심이반과 무능력한 왕에 대한 민초들의 봉기로 자신이 왕권을 유지되지는 못할 망정, 불경한 아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기에 나폴레옹의 회..
'시녀들' 당시 왕궁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1656년 바로크 기조로 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가로 3단, 세로 7단의 구도로 나눠 관찰자가 그림을 관찰하는 동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당대 국왕인 펠리페 4세와 그의 장녀인 마르가리따 공주, 그리고 합스부르크 출신의 왕비 마리아나도 등장하여 '가족도' 혹은 '펠리페 4세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 궁정의 시녀 개념인 무수리와는 달리 서양 왕궁의 시녀는 모두 귀족 가문 출신입니다. 마땅히 옮길 한글 단어가 없어서 '시녀들'이라는 제목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화가인 벨라스케스 자신, 무릎 꿇고 있는 사촌, 마르가리따 공주, 또 다른 시녀, 전경의 두 난쟁이, 그 뒤로는 시녀장과 왕비의 수행원이며, 뒤쪽 문..
아시다시피 모나리자는 현재까지도 인류가 보유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La Gioconda라 조콘다, 프랑스에서는 La Joconde라 조콩드라고 불립니다. 원 본은 입가에 음영을 넣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모호한 미소를 완성시킨 점에서 기술적으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다른 역작들을 제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죽을 때까지 항상 가지고 다녔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의 천문학적 가치는 수 세기가 지나도록 꾸준히 이어져, 20세기 초반 도난 당시에 상당한 수의 모작이 쏟아져나와 너도 나도 앞다투어 진본이라고 주장하며 불법 경매나 거래를 통해 고가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모나리자로 이름 지어진 수많은 그림들 중 하나는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