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18일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기 하루 전날이었다.
티비에서는 20세기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폭풍 피해를 입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소식이 일주일째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서너 번 연거푸 샴푸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평소와 달리 그녀는 옷을 벗지 않고 나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누워있었다.
나는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뭔가를 말하려 하다가 이내 잠자코 있기도 하고 무언가 시큰둥해 보였다.
그러다 대뜸 나에게 왜 이탈리아인들에게 당하고 있느냐며 화를 냈다.
그날은 같은 학교 재학생이었던 이탈리아인들이 내 정수리에 침을 뱉었던 날이다.
다음 날 축제가 시작되고 저녁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길거리 곳곳에는 성행위를 하는 커플들과 공원에서 옷을 벗고 자는 사람들과 자신이 먹은 것들을 확인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축제 둘째날 나는 잔뜩 술취한 이탈리아인들을 만났다.
아침에는 그녀를 만나서 해야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다시 나는 그녀에게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옷을 벗은 채였다.
정말 영원한 것이느냐 내게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몇몇 사람들이 사라진 이탈리아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옥토버페스트가 한창이었다.
여느 때처럼 일본인들이 축제에 많이 찾아왔다.
가슴이 빈약해서 안쓰러운 일본 여자가 부족한 가슴을 그래도 열심히 끌어모은 채 바이에른 전통의상인 디른들을 입고 나를 보며 웃었다.
날씨가 추워서 오들거리며 웃는 것도 안쓰러웠다.
슈파텐 비어텐트에서 돼지족발을 시켜다가 1리터나 되는 마스비어를 각자 두 잔씩 비우고도 파울라너 비어텐트에서 한 잔씩을 더 했다.
밤 열한 시 반 폐장할 때가 되어가면서는 5분마다 한 번씩 화장실을 드나든 것 같다.
그렇게 각자 세 잔을 비워낸 뒤, 그날의 축제가 끝나고 내 침대에는 그 여자가 함께 머물렀다.
우발적이고 단발적인 일이었다.
다음 날 그 일을 알게 된 그녀는 울면서 내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했던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고 바닥에 닿으면 치고 올라가듯이, 격한 감정을 소모한 뒤 벌거벗은 채 이어진 일은 처음 치렀을 때 느낌만큼이나 강렬했다.
다시 별 일 없었던 것처럼 함께 학교를 다니고 남은 옥토버페스트를 즐겼다.
그 후로는 얼마간 조금 건조한듯한 관계가 이어진 것 같다.
그해 12월 방학이 되기 며칠 전, 그녀는 내게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다며 선물 상자를 건내주었다.
오토쿼츠 시계와 딸기잼이 들어있었다.
편지에는 만든 사람이 없는 시계라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시계가 아니라 저절로 만들어진 시계라고 적혀있었다.
캐패시터가 죽은 것인지 시계는 멈추어 있었다.
딸기잼은 탄맛이 났다.
이윽고 그것들의 의미를 깨닫고 상자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것들의 의미는 ‘의미가 없음’이었다.
며칠간 소식이 뜸하던 그녀는 학기를 마치던 날 일언반구도 없이 벨기에로 떠났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 스케쥴을 알아보고자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 인생이 좀먹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첫 번째 이탈리아인은 배꼽 왼쪽 부위에 골동품 수준의 22구경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쓰러져 10분쯤 지나 정신이 희미해져갈 때 얼굴가죽이 벗겨진 다음, 왼쪽 눈썹 위, 왼쪽 눈 밑, 왼쪽 턱 밑, 오른쪽 눈에 각각 한 발씩을 맞고 죽었다.
두 번째 이탈리아인은 장방형의 중식칼에 의한 승모근과 빗장뼈 절상을 입고 쓰러졌고, 쓰러진 상태에서 팔다리의 경첩 관절을 절단 당했으며, 절상 부위는 베이킹소다에 의해 지혈 됐고, 얼굴가죽이 벗겨진 다음, 두 시간이 더 지난 뒤 중식칼에 의해 두개골이 여섯 번 쪼개지면서 죽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세계사 서적에서는 아시리아의 사형 방법 중 하나로 죄인의 몸을 회 뜨는 능지형에 대해 다룬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마무리했더라면 이탈리아인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살면서 흔치 않을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즐거움을 누릴 시간이 넉넉치 않았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두 명의 이탈리아인은 죽은 상태에서 잇몸이 통채로 뜯겨지다시피 잘려나갔고, 양손도 중식칼에 의해 절단되었다.
잇몸과 손은 학교내 열역학연구소 소각장에서 태워졌을 것이고, 얼굴가죽은 들짐승들이 금새 먹어치웠을 것이다.
어쨌건 이탈리아인들은 그저 길바닥에 널부러진 게 아니라 흙 속에 묻혔기 때문에 그들이 영혼이 떠나기 전까지 그리 춥지는 않았을 테고, 게다가 옥토버페스트 첫 날을 즐기고 떠났으므로 적어도 좋은 추억 하나는 남긴 셈이다.
지옥에 머무르고 있을 그들의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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