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방사선 방호위원회가 최근 입수한 렉터 박사의 서신에는 토륨 방사선 동위원소가 다량 포함되어 있었는데, 장당 무게 4.5그람 정도의 일반적인 A4 용지 7장으로 구성된 문서가 총 30그람 남짓의 물질이 지닐 수 있는 최대량의 토륨을 지니고 시간당 220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을 방출하고 있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상주 우주인이 일년간 피폭되는 총 방사선의 열배를 넘기는 수치였죠.
방사능 물질이 체내에 들어가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로서, 방사선은 방사형으로 지속적으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체외에서 피폭이 된다는 것은 나노미터에서 10^-10미터 단위의 초미세탄을 개틀링포 수천 대로 집중포화 맞는 것과 같습니다.
두 경우 모두 감마선이 지나간 모든 세포와 유전자에 나노단위의 구멍이 나게 되죠.
방사선은 고에너지의 입자 혹은 광자이므로 세포막의 결합부터 파괴하고 수소결합으로 이루어진 유전자도 파괴합니다.
유전자의 오류부터 복구가 힘들고 방사능에 의해 이온화된 체내 수분 또한 문제라서 이온화된 수분에 의한 손상 역시 엄청납니다.
방사선에 의해 파괴된 물분자는 활성산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굳이 방사선이 아니더라도 고에너지의 전자기파나 입자선은 물분자를 쉽게 쪼게는데, 특히 방사선은 가장 위험한 하이드록시라디칼을 만들어냅니다.
덧붙여서, 행여 중성자선에 피폭된다면 체내 나트륨은 나트륨24라는 물질로 바뀌고 스스로 방사선 물질로 바뀝니다.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사는 주민은 연간 총 0.1 마이크로시버트 미만의 유효선량에 노출됩니다.
그런데 바나나 하나를 먹을 때 0.1 마이크로시버트에 노출되죠.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때는 회당 5 마이크로시버트에 노출되구요.
배우자와 매일 한 침대에서 잠을 자면 연간 총 0.02 밀리시버트에 노출됩니다.
사람의 몸도 칼륨40과 탄소 등으로 인해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담배를 한 갑 피우는 경우, 국제 방사선 방호 위원회에서 규정한 연간 노출한도 권고치인 1밀리시버트보다 최소 열배, 많게는 사십배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됩니다.
저는 카스피해 연안에 람사르라는 도시에서 월터 노이만 박사를 비롯한 여러 핵물리학자들과 두 달 째 머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를 과남용하여 심박유지장치와 간투석장치로 생명을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렉터 박사의 서신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에 노출된 후, 피폭에 의한 세포 손상이 아닌 되려 정상으로 회복되었는데 이 현상에 대해서는 후술합니다.
후쿠시마 현의 오쿠마 구는 조반센이 지나는 오노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2011년 원전 사고로 방사능을 뒤집어 써 연간 250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람사르는 토륨이 풍부하여 일부 가정집에서는 후쿠시마의 네 배에 달하는 1시버트의 등가수치를 보여줍니다.
람사르 시민들은 방사능 샤워를 실시간으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동행한 핵물리학자들과 저는 물론, 월터 노이만 박사 역시 람사르 주민들이 온갖 유전 질환과 암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역학 조사를 실시했지만, 람사르 주민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니, 문제가 없는 걸 넘어 지구촌 평균보다 수백 배가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유전자 복구능력이 뛰어나고 1.5그레이(150라드)의 감마선에도 유전자 손상이 덜 했으며 방사선에 의한 세포 손상 내성도 강했죠.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검토를 진행하다가 원자력 자동차 연구진들과의 미팅을 통해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현세대에 전기차와 수소차, 그 다음 세대로는 원자력 자동차가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토륨을 원료로 사용하며 한 번 주입하면 1세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차량 내 원자로가 작으면 중성자 통제가 어려워 연구원들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산화란타넘으로 대체될 수도 있죠.
렉터 박사의 서신은 람사르에서 토륨 방사능에 오염되었지만, 토륨이 붕괴되면서 라돈의 동위원소인 Rn-220, 즉 토론이 방출되는 게 아닌 알파 붕괴 상태 이전의 프로트악티늄 231과 산화란타넘으로 치환되었습니다.
렉터 박사의 아들이 머물던 아공간에 서신이 잠깐 보관되던 동안 콤프턴 산란에 의한 기작으로 방출된 대량의 광자에 노출되어 찰나의 순간 A4 용지에 작용한 조석력이 미친 결과로 보입니다.
프로악티늄 231은 사리에서도 다량 검출되는데, 장석과 카오리나이트를 동물의 뼈가 함께 고온에 구워서 얻어낸 사리에서도 동일하게 프로악티늄 231과 산화란타넘이 확인되었습니다.
체심방정계 구조를 갖춘 마르텐사이트 조직의 강철이 4300킬로그람의 압력에 붕괴되는데, 이렇게 얻어낸 사리는 6800킬로그람의 압력도 버텨냈습니다.
얻어낸 사리 중 절반은 물질 치환기에서 렉터 박사의 세상으로 전송되었습니다.
사리를 복용한 렉터 박사의 아들은 일어섰고, 렉터 박사의 세상은 사리 대량 생산에 성공하여 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은 정복되었습니다.
이제 텔로미터 유지 기술과 방사선을 이용한 모든 세포의 텔로미어를 동시에 복구하는 기술을 접목하면 렉터 박사의 노화도 곧 역전되겠죠.
작년에 영국 라운티드 웰즈 마을에서 겪은 기현상과 이후에 이어진 연구를 통해 결국 우리가 텔로미어 길이를 영구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알아낸 덕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껏 별 생각 없이 읽어온 이 서신들에는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데 필요한 과학자들의 기술과 그 수준에 결정적인 힌트가 될 것입니다.
인류의 삶을 바꾼 인쇄술, 엔진, 전신, 전화는 전세계에 걸쳐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발명을 해왔습니다.
다만 그것을 상용화하고 보편적으로 보급했던 사람이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키긴 했습니다만,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되어 온 현상은 어느 한 사람의 구상이었던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특정한 힌트가 주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 힌트가 어떤 수단을 통했던 어떤 형태가 되었든 말입니다.
다음 세대의 과학을 맞이할 채비를 하십시오.
그날은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어느 날, 불현듯 도둑처럼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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