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영국 웨일스 포위 지역의 라운티드 웰즈 마을에 머무르고 있다.
육상 관다발 식물의 표본을 채취하고자 마을에서 약 10 킬로미터 떨어진 린브리안 늪지로 나갔는데 독립배우체 종의 양치식물의 집단을 발견했다.
유세포 분석기로 현장 분석을 하는데 굉장히 흥미롭게도 대량의 티아민분해효소가 양치식물로부터 45초 간격으로 간헐적 배출되는 상태였고 양치식물 집단의 주위에서부터 꽤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아코니틴이 토양과 주변 식물들 위에 덮여있었다.
해가 질 때가 되어 조사를 내일 이어하기로 기약했다.
3월 2일
주위를 조사하다가 소리 없이 나를 응시하는 어린 암컷 늑대를 발견했다.
생후 2주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 개체였다.
늑대 서식지 환경과는 정반대의 늪지에 늑대가 홀로 있다는 자체가 굉장히 의아한 일이었고, 양치식물에 의해 일어나는 일련의 기이한 현상 역시 기존 생물군과는 다른 불가해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현재 살아 숨쉬는 어린 개체이므로 더 생각할 겨를 없이 마을로 데려와 당분간 보호조치를 하기로 했다.
앞선 의아한 상황보다 더 신기한 것은 늑대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늑대의 체내에 아코니틴이 상당량 축적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세포 내 나트륨 이온채널이 전혀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아세틸콜린은 동종 포유류와 거의 같은 정상적 수준으로 분비되고 있다는 결과였다.
4월 8일
계속 이어간 연구를 통해 밝혀진 특징은 거의 대부분의 결과에서 생물학적 통념을 거스르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통념만을 거스를 뿐 생물학적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분명 이러한 신체 기전을 다른 생물이나 인간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리라 전망했다.
먼저,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첫 번째 단백질의 일부 아미노산에 변형이 일어난 상태였고,
둘 째로, 암 발병인자를 지니고 있음에도 뮤코다 당으로 분리된 정제된 히알루론산을 체내에서 만들어내어 암을 강력히 억제하고 있으며,
셋 째로, 젖산에 의한 산증은 다른 포유류와 같은 조건으로 발현됐지만 조직손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넷 째, 암 발병을 일으키지 않는 텔로머레이스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세포 분열 이후에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있었다.
5월 5일
종합한 결과, 통증 신호 전달 매개가 변형된 상태이므로 젖산에 의한 산증으로 조직손상이 다소 야기될 때 통증을 느끼지 않고, 암인자를 분명히 지니고 있으면서 유전체에 각인된 암 발현시기를 지나친 상황에 텔로미어가 길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한편, 히알루론산이 세포간 유기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암을 억제하는 믿을 수 없는 역설을 확인한 셈이다.
6월 6일
늑대로부터 체세포를 복제하여 실험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임상실험에서,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부작용은 필연적으로 일어났다.
유전자 가닥의 한쪽 끝 부분이 제대로 복제되지 않는 분열 한계와 말단복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를 우회하고자 말단소립 텔로미어의 소모량을 극단적으로 줄이거나 소모를 역전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로 헤이플릭 한계에 도달했고, 몇 차례 더 반복된 동일 조건 실험에서는 아예 유전자가 마치 자가판단을 하는듯 중합효소를 소진시켜 복제 능력을 스스로 상실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유사한 형태로 역전사 효소인 텔로머레이스를 텔로미어와 상보적 결합을 시켰으나 초고속 분열로 인해 암 발병률이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암 발병을 억제한 텔로머레이스를 결합했을 때 오히려 돌연변이에 의해 만들어진 샤페론 단백질에 의해 수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8월 15일
이후 나는 텔로미어 변형 등의 방법을 그만 두고 순수학문에 더 가까운 원천기술로 접근하여 다양한 줄기세포를 적용했다.
기존의 유전자와 인위적으로 만든 유전자와 사이에 티미딘 인산화 유전자를 같이 집어넣어 상동 재조합이 일어나도록 시도했으나 이 상동 재조합은 매우 드문 확률로 일어났고 재조합이 된 경우 대체로 세포는 무한 분열하면서 높은 확률로 암세포로 변이했고, 역분화줄기세포 적용 시에는 종양 유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유전자만 전사하여 테라토마 발생 확률을 낮추었지만 낮은 확률이라 하더라도 악성종양은 여전히 발생했다.
10월 3일
일련의 처참한 연구 결과에 무릎을 꿇은 나는 현 세대 과학 기술로는 생명 연장과 불로, 더 나아가 노화 역전과 준영생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일련의 연구는 약 7개월 정도가 걸렸고, 그 사이 늑대는 전혀 늙지 않고 몸집도 처음 발견했던 당시 생후 2주로 추정되던 그때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신체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늑대를 바라보며 놓지 않았던 실낱같은 희망을 동시에 품은 채, 나는 늑대를 데리고 여태까지 얻은 연구 결과 데이터를 챙겨 댄지어스 톨맥 박사가 머물고 있는 한국으로 향했다.
10월 9일
황교수 사태를 겪은 후에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줄기세포 소식에는 들썩이고 있었다.
주식시장에서는 만년 떡밥이 되는 테마주였으며 줄기세포 관련 뉴스가 뜨면 관련주들의 주가는 단체로 상한가도 갔다가 하한가도 갔다가 널을 뛰는 나라였다.
나는 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백서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 여파를 몰아 나는 회사를 상장했으며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12월 24일
나는 생명 연장과 노화 억제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며 많은 절망에 부딪혔으나 이 분야의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은 편이다.
부작용이 거의 없는 텔로머레이스는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
다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이 텔로머레이스를 통해 한 인간의 모든 세포의 텔로미어의 길이를 동시에, 그리고 단기간 내에 늘리는 기술은 현대 과학의 수준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근미래에도 개발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영생의 가능성은 모래 한 톨만큼이나마 열어젖힌 셈이니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한다.
12월 25일
오늘 새벽, 갑자기 늑대가 생식기능을 갖추게 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즉, 배반포의 내세포괴로부터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줄기세포를 통한 인간의 생명 연장은 무조건 가능하다는 얘기다.
프로그래밍으로 치자면 버그와도 같고, 매트릭스로 치자면 깨진 수열과도 같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 늑대는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선물인 셈이다.
일단 기분이 좋아진 나는 개미들의 투자금을 전량 현금화하고 주식을 상폐시킨 다음 도망쳤으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아쉬운 일이지만 개미들은 자살했고 이제 그들은 영원히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할 수 없는 흙으로 돌아가버렸다.
12월 31일
저녁에 참석한 심포지엄에서 SCP 재단의 알토 클레프 박사와 연방종합과학연구소의 윤 데이빗 박사가 내년 █월 █일부터 ███는 ███를 ██하여 ███ ████과 ███을 ██하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공개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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