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라는 동물은 늑대와 그 조상을 같이 합니다.
최소 1만 5천년 전에서 길게는 4만년 전부터 -자의든 타의든- 인간과 공생의 길을 택한, 그리고 현재 늑대로부터 이종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는, 그러나 아직은 완전한 종 분화를 겪지 않은 아종이죠.
개는 인간의 감정을 읽고 인간을 따르도록 기질 자체가 바뀌어왔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져 온 게 아닌 야생성을 그대로 보존해온 동물이므로 인간을 맹종하지 않습니다.
개는 지 어미년과도 붙어먹는 콩가루 혈통이지만, 늑대는 평생을 단혼제로 살아갑니다.
개는 주인을 온전히 주인으로 섬기고 따르지만 늑대는 주인을 주인이 아닌 리더로 여깁니다.
서열이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에는 항상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합니다.
리더를 따르다가도 리더를 쓰러트리고 자신이 리더가 되어야만 하는 야망 어린 도전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는 톨맥 박사로부터 인수 받은 암컷 늑대 한 마리를 연구소에 들였습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애쓰고 준비하는 한 과학자로서, 늑대에게 물려 뒈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늑대를 매일같이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왔습니다.
행여 이대로 때리다가는 죽을까봐 걱정이 되면서도 이따금 나도 인간인지라 감정을 주체 못하고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가 심장이 멎을 때까지 패기도 했죠.
하지만 연구소에는 다행히 다양한 의약품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고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는 아드레날린으로 다시 늑대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늑대는 나를 볼 때마다 꼬리가 가슴에 닿을 정도로 밑으로 만 채로 똥오줌을 쌉니다.
최근에는 수신호로 앉아, 일어서, 돌아 등의 훈련도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을 들어 인사를 할 때마다 기절하길래 훈련은 좀 보류해 둔 상태입니다.
각설하고 나는 그 늑대의 이름을 고양이라고 지었습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내가 기르던 고양이들도 늑대와 같은 방식으로 두들겨 패서 나를 따르게 만들었는데, 개 이상으로 저에 대한 맹목적인 충정을 보였었죠.
자살하라는 명령에도 즉각적으로 자살할 정도로 말입니다.
한 번은 소개팅 자리에 나온 여성분과 반려동물에 대해 주제 삼아 대화를 나누다가 여성분이 고양이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 아니라 주인과 자신을 수평적 관계로 인식한다고 주당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렇지 않다는 반증을 보여주고자 고양이를 훈련시키며 촬영해둔 영상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김치찌개를 붓고 밖으로 달려나가더니 이윽고 경찰과 함께 돌아오더군요.
그렇듯 우매한 사람들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을 통해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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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 댄지어스 톨맥 박사는 고양이라는 이름의 그 늑대-이하 고양이-의 배반포 내세포괴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달리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동속, 동족 포유류에서 관측된 바 없는 기전을 지닌 아주 특이한 녀석이었습니다.
녀석의 세포는 동종 포유류와 같은 속도로 분열되고 있으면서도 세포의 텔로미어의 길이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었죠.
텔로미어가 줄지 않는 늑대의 배아줄기세포, 그렇습니다.
영생이 이제는 더이상 이론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그러나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 존재했습니다.
고양이로부터 복제한 체세포와 내세포괴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수천여 차례의 실험이 이어졌지만 좀처럼 쉽게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포분열은 매번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테라토마의 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몇 가지의 예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례가 있습니다.
키우던 거북이에게 귀두를 물어뜯긴 남성의 그 부위에 배아줄기세포를 주입하자 뇌간과 척수가 생겨나더니 사람의 두개골이 갖추어지고 눈코입도 생겨난 일입니다.
여성과의 성교는 어렵게 되었지만 무료함을 달래줄 동료가 생긴 셈이죠.
남성은 거기서 자라난 그에게 좆대가리라는 이름을 붙였더군요.
문제는 남성이 소변을 볼 때마다 좆대가리의 눈코입에서 소변이 흘러나오고, 남성이 대변을 볼 때는 지독한 냄새를 매번 감내하다보니 좆대가리는 매일같이 그에게 짜증을 토로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 부위에 주입한 줄기세포가 그 부위를 대체하거나 메울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고 전혀 엉뚱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과정에 뭔가 오류가 있음을 인지한 연구팀은 이에 대한 열쇠가, 고양이가 발견된 늪지의 기이한 양치류 식물과 주변 환경, 그 환경과 늑대가 지닌 기전과의 상관 관계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접근해보기로 했습니다.
연구팀은 톨맥 박사가 고양이를 처음 발견한 늪지로 향했습니다.
늑대가 발견된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아코니틴이 지표에 두껍게 쌓여있다는 톨맥 박사의 보고서가 있었는데 연구팀의 조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코니틴이 동물의 체내에 쌓이면 호흡곤란과 부정맥에서 시작하여 빠른 시간 내에 심정지에 도달합니다.
늪지는 한 번 잘못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특성상 온갖 동물들이 죽음을 맞는 장소입니다.
늪을 피해 퇴적물을 밟으며 이동하던 많은 동물들이 아코니틴 중독에 의한 심정지로 늪지에 빠졌을 것입니다.
늪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점에는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들에게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라서 우리는 그곳에서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수많은 동물들의 사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의 뼈는 예외 없이 과염기화된 설폰산칼슘으로 변이된 상태였습니다.
때때로 음이온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나 그 이상의 지적존재에 의한 의도된 결과 말고는 이유가 없는 상태였죠.
톨맥 박사가 늪지 조사에서 빠트린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늪지의 공기 중에는 그가 관측한 티아민 분해효소 뿐 아니라 과량의 칼슘도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설폰산칼슘이 왜 과염기화되었고, 왜 공기 중에 칼슘이 떠다니고 있는지 그 역학을 조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칼슘을 단서로 하여, 정말 단순하게도 이미 학계에 보고된 바 있는 방법, 즉 배아줄기세포의 일부를 계속해서 칼슘에 노출시키는 과정을 거쳐보니 정상적인 늑대의 자궁에서 자라나는 같은 늑대 태아의 형태를 갖추어갔습니다.
동종 포유류의 처녀생식이 가능함을 확인하는 최초의 순간이었죠.
다만 수컷 정자의 정보, 즉 유전자가 결합된 것이 아닌 말 그대로의 처녀생식이었기에 태아의 유전 정보는 어미와 완벽히 똑같았습니다.
그 태아 역시 결론적으로는 테라토마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상식처럼 단순한 악성종이 아닌 사고하고 판단하는 생명체, 태동하는 생명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테라토마이면서 동시에 생명체인 이것이 최초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셉이라는 남편이 있었지만 그와의 동침이 없이 잉태를 했던 마리아.
그 마리아로부터 난 자녀인 예수 역시 테라토마였던 것입니다.
예수가 서른 살부터 삼 년 간의 짧은 사역을 통해 수천 년간 그 파급이 아직도 식지 않았던 것 그 이상의 파급력을 이 늑대는 지니고 있습니다.
이 늑대는 이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상이 달라진 것은 뭐가 있을까요?
수많은 과오를 저질러온 교황청,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고 없는 내용을 우겨대며 신자들의 돈을 뜯는 개신교,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국가들에서 쉼 없이 이어진 전쟁과 학살, 질병과 가난과 기아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
그러나 늑대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결국 모든 장기의 한계, 신체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영생을 현세대부터 누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는 내 일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와 중압감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 압축배트로 늑대들을 흠씬 두들겨 패면 아예 피떡이 되어 형태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스트레스만큼은 해소가 되기에 나는 요즘 목초지 등의 야생늑대들을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는 일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을 통해 영생을 얻은 복제 늑대들도 저는 이미 수차례 두들겨 패죽여왔습니다.
그러니 나는 여러분이 영생을 불사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생이 실현된 세상이라 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병신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두들겨 맞다가 숨지는 것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인간 대상의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우리 연구소는 이를 상용화하고, 장기 재생성, 절단부 재생성, 불치병 치유, 영구적 텔로미어, 이 모든 시술 상품을 우리는 한 번에 내놓고 전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가격은 쭗천억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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