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면서 집 소파에서 풍기는 냄새가 점점 더 심해진다.
평소에 소파에 뒹굴 때에는 일어나기가 귀찮아 소파에 오줌을 자주 쌌기 때문이다.
패브릭 소파라서 흡수가 잘 되는 건 다행인데 냄새가 새어나오는 게 단점이다.
이 큰 가구를 바꾸자고 진작에 마음 먹었어도 소파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상반신 마비인 내 입장에서 쉽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나는 Things라는 할 일 관리 앱을 하나 쓰고 있다.
앱에다가 리스트를 하나 추가해보았다.
□ 소파 바꾸기 |
이렇게 소파를 바꿔야 하는 일거리가 내 할 일 목록에 추가되었다.
집에서는 소파가 쉴 새 없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나는 이 앱을 사용할 때마다 “소파 바꾸기” 리스트를 보면서 소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꾸기가 영 귀찮게 느껴진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유는 소파가 일단 너무 무겁고, 또 소파를 바꾸기 위해 내가 해야할 구체적인 행동을 결정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동섭이 자꾸 괴롭히는 이유가 크다.
즉, “소파 바꾸기” 리스트는 단지 언젠가 내가 끝내야 할 일에 머물 상태일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일이 아닌 상태라는 얘기다.
이걸 해결해줄 일처리 방식 중에 getting things done이라는 게 있다.
그럼 이제 “소파 바꾸기”라는 행동을 getting things done 방식으로 작성해 보자.
□ 마음에 드는 소파 보러가기 또는 주문하기 □ 소파 같이 버리러 갈 사람 구하기 □ 리동섭에게 명령하기 □ 돈주고 인부를 부르기 □ 구청 홈페이지에서 대형폐기물 배출 신고하기 □ 수수료 결제 □ 신고필증 인쇄 후 부착하기 □ 소파 내다놓기 □ 힘들면 돼지국밥 먹기 □ 새 소파 배송 들여놓기 |
자, 이젠 어떠한가?
“소파 바꾸기”라는 막연한 할 일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이 정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던 일이 이번에는 실제로 무엇부터 어떤 순서대로 해야 일을 끝낼 수 있을지 명확하게 보인다.
따라서, 할 일 다음 이어질 행동은 반드시 “물리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동”이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인 getting things done은 “일을 해낸다” 정도의 어감이다.
보통 각 단어의 머리를 따서 GTD 기법이라고도 부른다.
이 기법을 응용한 혹은 입각한 일처리 방식을 “스트레스 제로의 생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을 단순하게 분류해보자.
머리가 좋거나, 나름의 노하우로 자기만의 일처리 방식이 있거나겠지.
머리가 좋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선에서 분투하는 제군들 중 한 번쯤 업무 처리에 감을 못잡고 패닉에 빠졌다가 누군가에게 쿠사리를 먹어본 적 있다면 분명히 똥대가리일 것이다.
그런 똥대가리들은 효율성이 입증된 일처리 방식을 한 번 따라볼 필요가 있다.
살펴보자.
효율성이 입증된 일처리 방식은 탑다운과 바텀업,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탑다운은 목표를 먼저 세운 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단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해 나간다.
이걸 정리해주는 유명한 도구가 바로 프랭클린 플래너다.
다음으로 바텀업은 밑에서 넣음 당하는 게이가 이번에는 위로 올라가서 넣음 하는 방식이다.
사실 바텀업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해 나가면서 보다 상위개념의 목표를 병행하여 설계하는 방식이다.
바텀업이 바로 GTD 기법의 일처리 방식이다.
바텀업의 관건은 스트레스 없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며 물흐르듯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GTD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리스트에 구체적 행동을 모두 정하면서 아주아주 작은 일거리 뿐 아니라 고민마저도 모조리 리스트에 작성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리동섭의 정신병이 왜 그렇게 심각한지에 대한 고민도 상세히 작성해두었다.
아무튼 이 리스트 작성은 보통 짧게는 몇 시간에서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것이든 모든 것을 리스트에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끝나면 어느 정도는 쉰다.
잠깐의 휴식 후에는 이제 구체적 행동들을 비우는 작업을 한다.
워크플로우에 입각해서 실제 실행할 수 있을지, 포기할 것인지, 실행한다면 어떻게 실행할지 등을 분류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GTD 일처리 방식을 한 마디로 내가 표현한다면
“일을 잘게 쪼게면 무조건 처리할 수 있다”
이 기법에서는 할 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관리하는 것이다.
행동을 경영한다 라고도 표현한다.
또한 할 일 리스트라는 표현 대신 “다음 행동 리스트”라고 부른다.
다음 행동을 실행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 조건은 실행 환경이다.
이 기법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다음 행동은 실행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개념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개인은 환경을 바꿀 수 없고 그 환경에 종속된다라는 의미다.
불로소득 갑부가 아닌 이상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주변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적일 것이다.
근무시간이 정해진 사무실에 가야만 할 수 있는 일들과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테고, 퇴근 후나 주말에 길바닥에 나가야만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가능한 일들부터 처리할 수 있는 게 환경에 종속된다는 얘기다.
“다음 행동”을 실행하면서 한 가지 규칙이 있다.
2분 규칙이다.
2분 내에 해결되는 다음 행동이라면 그 행동의 우선순위가 낮다 하더라도 그 즉시 실행한다.
이 개념 하나만으로도 상당량의 일을 미루지 않고 처리해낼 수 있다.
반대로 프랭클린 플래너는 우선순위가 낮은 것은 뒤로 미루고 높은 것과 소중한 것부터 먼저 처리하라고 안내한다.
아무튼 2분이라는 시간은 하나의 다음 행동을 처리하기에 개개인 각자에 따라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이건 그저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대갈통이 후달려서 2분 짜리를 반나절 동안 처리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서너 명이 할 일을 혼자서 처리할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2분 규칙을 다음 행동을 연기시키는 일종의 휴식으로 생각한다.
2분 이내에 즉시 실행 가능한 다음 행동이라면 리스트에 작성해둘 필요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수집함을 비우려면 워크플로우(업무흐름도표)를 기준으로 하여 각각의 일거리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수집함을 비우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수집함에 있는 것들은 우선순위가 없으므로 반드시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한 번에 처리한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수집함에 들어있는 항목들을 모두 동등하게 봐야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이든 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둘째, 수집함에서 한 번 꺼낸 항목은 절대로 다시 수집함에 넣지 않는다.
꺼내고 다시 집어넣는 일을 반복한다면 수집함은 쓰레기통이 된다.
따라서 한 번 꺼낸, 혹은 한 번 처리하려고 마음 먹은 항목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조건 처리되어야 한다.

이 워크플로우 수집함에 들어있는 항목들은 실행할 수 없는 것과 실행할 수 있는 것,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취할 행동도 없고 보관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는 즉시 삭제한다.
그리고 참고사항으로 보관해둘만한 자료들은 참고자료로 보관한다.
언젠가 리스트는 미루어두어야 할 것들을 보관한다.
다만 언젠가 리스트와 추후확인 리스트에 보관된 항목들은 아직 가공되지 않은 일거리들이므로 정기적으로 재검토하여 다음 행동으로 변환하는 가공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2분 이내에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은 즉시 실행하여 해결한다.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완료해야 하는 행동은 연기 후 다음 행동 리스트에 입력하고, 특정 날짜나 시간에 해야하는 행동은 연기 후 스케줄러에 입력하거나 달력에 표기해둔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할 행동은 위임 후 대기중 리스트에 입력한다.
장황하게 설명한 상기 모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수집-분류-정리-실행-검토
수집: 메모장, 엑셀, 마지막에 소개할 앱 등을 준비하고 해야할 일들을 하나씩 적는다.
분류: 해야할 일들 중 버릴 것, 남에게 부탁할 일, 내가 할 일로 분류한 후, 2분 이내에 실행할 수 있는 일, 언젠가 할 일, 머지 않아 추후 할 일로 분류한다.
정리: 2분 이내에 할 수 있는 일은 즉시 처리하고, 마감 기일이 있는 일들은 스케줄러나 달력에 표시하고, 남는 일들은 할 수 있는 환경(직장, 길바닥, 집, 마트, 집창촌, 국밥집, 심해)에 따라 목록을 분류하여 정리한다.
실행: 그 목록에 따라 처리한다.
검토: 만든 목록을 종종 꺼내들고 처리한 일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재분류, 정리한다.
이 일처리 기법은 고안한 사람은 데이비드 앨런이라는 경영 컨설턴트다.
GTD를 잘 소화시키고자 한다면 이 책(yes24 판매링크)을 읽어보라.

아무튼 이 유명한 기법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명작 두 개가 있다.
원래는 둘 다 쓰다가 몇 년을 팽게쳐두었고 리동섭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금치산자가 된 나는 OmniFocus를 다시 쓰기엔 구독료가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곧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될 내 입장에서 이제 스스로의 업무 관리가 필수라 Things를 다시 쓰기로 마음 먹게 됐다.
두 앱 중에서 OmniFocus는 할 일을 관리하는 과정 중에 하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고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면 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속박감이 생긴다.
반면에 Things는 간단하고 편리하며 할 일을 하기 위한 관리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는 느낌 하에 사용하게 된다.
“일을 잘게 쪼게면 무조건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리동섭의 정신병은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넣기소년의 신변잡기 > 훈도교범 (지침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기 불편하지만 한적해서 즐거울 그날을 준비하세요 (2) | 2024.06.18 |
---|---|
월미도 역설 (4) | 2021.04.28 |
디볼에난데카 스택 중급자 10주 사이클 (0) | 2017.10.24 |
정치적 스펙트럼 (0) | 2016.07.02 |
단순한 네트워크 오류 해결법 (0) | 201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