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동산에 가면 놀이기구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지겹도록 오랜 시간을 기다립니다.
저는 경험상 한 시간 반 가량 기다린 적도 적지 않습니다.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놀이기구에 탑승하고 벨트를 고정하고 갑작스러운 상승 또는 하강을 하는 동안 온몸을 움켜쥐는 스릴과 흥분.
지금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나 그 당시의 기분이 어땠는지, 중력을 거스르면서 또는 중력가속도 이상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신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낼 것입니다.
저는 유명한 국내외 놀이동산을 여러 곳 가보았습니다.
개중에는 사나흘을 돌아도 모자랄 정도의 거대한 놀이동산부터, 이용료를 거의 40만원에 구입할 정도로 비싸고 호화스러운 테마파크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연 최고는 월미도였습니다.
우중충하고 솔직히 들어가기도 싫은 장소였지만 아직 그곳 이상으로 인상적인 놀이동산을 경험해본 바 없습니다.
어딘가 나사가 풀렸거나 분명히 하자가 있을 것 같은 놀이기구들의 삐걱거림과 흔들림은 마치 목숨을 담보로 하여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이게 해줍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지 않고 놀이기구에서 내렸을 때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행복감이자 성취감과도 같았습니다.
추억에 대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를 월미도 역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놀이동산에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그리고 성인이 된 다음에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놀이동산에 있기보다는 집에 있는 소파에 뒹굴거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집은 덜 습하고, 덜 붐비고, 닭꼬치를 개당 5천원 미만으로 사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대부분이 놀이동산의 추억을 나중에 되돌아보면 올해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우리의 추억을 되돌아볼 때, 우리의 순간적인 감각을 평준화시켜 받아들이지 않고 단편적인 부분, 장면, 그리고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특히 우리가 불공평하게 기억하는 두 종류의 순간이 있습니다.
1) 경험의 절정, 즉 최고의 순간이나 최악의 순간
2) 그리고 결말
우리가 월미도를 되돌아볼 때 바이킹을 타던 순간, 가족 또는 연인과의 달콤한 한때와 같은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순간의 땀과 짜증을 우리는 좀처럼 잘 상기시키지 않습니다.
훌륭한 추억은 절정의 순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최고의 순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후천적으로 전문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련의 교육 과정을 통해 사회화되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훈련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황홀하지도 않고, 감흥을 주지도 않기에, 그저 사람들은 심드렁해 할 뿐입니다.
해결은 과정일 뿐이지 절정이나 결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디 하나 파인 곳이 전혀 없는 포장이 잘 된 도로를 따라 운전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황홀해서 쿠퍼액 같은 것이 줄줄 나오기라도 할까요?
아니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가 전혀 없는, 이전에 파인 구덩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문제가 해결된 상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공동인증서로 평소처럼 로그인이 가능하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서 봉산탈춤이라도 추게 될까요?
역시 아닙니다.
이때 여러분이 파티를 개최하고 싶다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려면 절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 서부 엘레이에는 매직 캐슬이라는 3성 호텔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 호텔에 처음 갔을 때 순전히 트립어드바이저의 평점만 보고 예약을 하게 됐는데 도착 후 첫인상은 극히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개좆같다"였습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이 호텔을 검색해보면 엘레이의 400여개 호텔 중 현재 8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한때는 2위까지 간 적도 있는 꽤 유명한 호텔입니다.
편의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낡은 느낌이 짙고, 사용된 바닥재나 페인트도 유행이 한 물 지난 촌스러운 소재들입니다.
정말 평범한 전형적인 3성급 호텔입니다.
수영장 한 켠에는 전화기가 한 대 있습니다.
체리 비슷한 붉은색입니다.
전화기를 들고 귀에 대면 누군가가 말합니다.
"얼음과자 직통 전화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포도맛, 체리맛, 오렌지맛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주문을 하면 마치 영국 집사처럼 차려입은 누군가가 장갑을 낀 채 여러 가지 얼음과자를 은색 쟁반에 담아 모두 무료로 배달해 줍니다.
치토스를 비롯해서 다양한 주전부리와 크림소다(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를 섞은 것)를 무료로 주문할 수 있는 스낵 메뉴도 있습니다.
보드게임 메뉴도 있고,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 메뉴도 있습니다.
아침에 로비에서 묘기를 부리는 마술사들도 있습니다.
미니바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게 무료입니다.
심지어 세탁물도 무료로 맡길 수 있습니다.
낮시간에 맡기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기 전까지 세탁을 마무리하여 깔끔하게 접은 상태로 가져다 줍니다.
객실 가구 뒷편, 침대 밑, 손이 잘 닿지 않는 세면대 밑 구석 어디 하나 먼지 한 톨 없습니다.
기본 포함된 아침 식사 때 나오는 다양한 빵, 시리얼, 햄, 버섯, 소시지, 음료들.
24시간 전화로 상담 가능한 상시대기 중인 의사.
허기진 채 늦은 밤 돌아와 식당이 닫아 문 앞에 서성거리던 우리를 위해 자기가 아는 가장 맛있는 피자집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대신 주문해주겠다던 리셉셔니스트.
객실 라디에이터가 고장나긴 했었지만 새벽 시간임에도 수리기사가 15분 내로 고쳐주었고, 헐리우드 면세점 10프로 할인 쿠폰도 제공 받았습니다.
개미가 나온다거나 하는 자잘한 단점을 언급할 생각조차 들지 않게 해줄 만큼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장점을 지닌 호텔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웅장한 럭셔리 5성 호텔인 포시즌스 베벌리 힐즈를 앞에 둔 이 소박한 호텔이 어떻게 엘레이에서 2위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우중충한 호텔이 2위가 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월미도 역설을 설명하는 중요한 해답입니다.
황홀한 추억은 대부분 잊혀지지 않는 놀랍고도 훌륭한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그 순간 전후의 불쾌한 수많은 경험들을 기꺼이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놀라운 순간들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훌륭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절정을 만들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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