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데이빗 박사의 3번째,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양자체인에 저장된 기록 중에서 발췌

기원전 7세기, 고대 신바빌로니아 칼데아 왕조의 2대 왕, 느부갓네살은 아시리아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멸망시킵니다.
이후 해당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홀로페르네스 총사령관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합병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받잡고 13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출정합니다.

바빌로니아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직선거리 600 킬로미터.
홀로페르네스 장군이 바빌론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에 도달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곳곳에 존재했었습니다.
여러 왕국들과의 장기간 전쟁도 치르며 이스라엘까지 당도하던 길목의 모든 왕국도 점령했습니다.
직선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지형 문제는 그렇다 쳐도 당시 바빌로니아의 명성? 악명? 앞에 장기간 전쟁에 돌입하거나 농성을 할만한 배짱 좋은 왕국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지..
5년의 기간은 다소 납득하기가 힘들군요.

어쨌든 홀로페르네스 장군은 이스라엘을 정복할 첫 관문인 성채도시 베툴리아에 도달했습니다.
베툴리아는 예루살렘 인근 도시인 사누르 혹은 미실랴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향하던 5년여의 기간 동안 야전에서 결코 입에 대지 않았던 술도 결국 유딧이라는 여인의 회유에 술을 마시고 목이 잘려 죽었죠.

각설하고 홀로페르네스를 출정시킨 왕, 느부갓네살 2세는 바로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왕입니다.
그것은 안티파트로스라는 그리스의 시인이 언급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되는 고대 건축물입니다.
자신의 아내 아마티스가 향수병에 걸리자 아내를 위해 고향과 닮은 건축물을 지어 선물을 한 것이죠.
디오도로스의 기록을 보면 건물의 꼭대기에서부터 수차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바빌로니아 일대에는 현재 이라크라는 나라가 들어서 있죠.
이라크는 지금처럼 사막이 퍼져있는 지역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당시 온대림 위주의 녹음과 물이 풍부했던 땅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과 같이 건조한 사막처럼 변한 것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관개 농업으로 인해 지력이 떨어진 것에 더해 몽골의 침공으로 수리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어서 땅이 급속도로 사막화한 결과일 뿐이죠.

그리고 이 공중 정원은 영어로 보통 행잉 가든스라고 부릅니다.
어딘가에 매달려 공중에서 부유한다는 의미인데, 디오도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높은 건물까지 물을 끌어올렸던 것이고, 공중 정원이 말 그대로 공중에 떠있었다는 것 등을 종합하면 하늘의 특정 지점에 중력역전지점이 존재하게 하거나 반중력 기술을 이용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력이 존재했었다는 데에서 여러 왕국들도 고에너지를 이용하는 군수품과 전쟁을 치를 전투력이 막강했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얘기는 억측이 될 수도 있는 가정입니다.
우리 시대에 처음 상용화된 타임머신은 일종의 수학적 패러독스로 인해 미래로만 일방향 운행이 가능하고 과거로는 역행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로의 관측 관점에서의 역행을 통한 단순한 관측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한데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특정 관성계의 현재의 기준이 그 관성계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한 관성계의 미래가 다른 관성계에서는 과거일 수 있으므로 동시성의 상대성에 따라 과거, 미래,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고, 여기에 괴델의 우주모형에 대입하면 충분한 속도를 갖췄을 때 원래 있던 시공간의 위치뿐 아니라 다른 시공간의 위치도 자유자재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믿고 있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동시에 티플러 원통의 시간 역설로 인해 과거로는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 불가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않게 쉬운 방법으로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최근에 교류를 시작한 외계 문명의 경우, 여행은 아주 얇고 굉장히 면적이 넓은 종이 접기 장치를 이용해 항성간 여행을 합니다.
최초로 직물가공성 종이의 형태를 나타낸 것은 페이퍼의 어원이 되는 이집트의 파피루스입니다.
그렇지만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채륜의 종이는 단순한 가공을 가해 대량생산을 해냈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이 종이가 만들어지면서 동양에서는 공공행정의 혁신을 일으키며 문물 전파의 속도가 서양보다 압도적으로 빨라졌습니다.
종이 접기를 이용해 항성간 여행을 하는 외계 문명은 우리 문명보다 종이를 수십만 년 전에 이미 만들어냈었고, 그들에게 종이는 단순한 기록을 전파하는 역할을 넘어 해당 문명의 인류가 우주의 저편까지 직접 도달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종이를 10번 이상 접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테니스장 크기로 종이 접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죠.
미국의 방송사에서는 일반적인 A4 용지 두께의 8분의 1 정도의 두께를 지닌 종이를 축구장 넓이로 특수제작하여 미우주항공국 격납고에서 아스팔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로드롤러 차량을 이용해서 11번 접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한 여고생은 기존의 접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12번 접는 데 성공합니다.
이론적으로 종이는 너비와 장력이 충분하다면 수천 번 접는 것도 가능합니다.
평균 0.14mm 정도 되는 A4 용지를 50번 접으면 그 두께는 1억 5000만 킬로미터를 넘깁니다.
지구 중심에서 태양 중심까지의 거리인 1억 4960만 킬로미터를 넘기는 것이죠.
100번 이상 접으려면 우리 세상의 과학 기술로 관측 가능한 우주 크기의 종이가 필요합니다.

종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바로 이 종이가 해결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티플러 원통의 길이 방향을 축 삼아서 회전시 발생하는 틀 끌림을 일으켜 시간축을 과거로 가는 세계선을 그릴 수 있는데, 종이 접기 이론을 여기에 적용하여 작용권의 특별한 영역에 종이를 넣고 접기 시작하면 기존에 추출 가능하리라 예상했던 블랙홀 총 에너지의 29퍼센트를 넘길 수 있습니다.
과거로 갈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된 것이죠.

한 가지 더, 과거에 개입하고 과거를 조정하여 내가 원래 살고 있었던 현재, 즉 미래가 변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수많은 변인을 초래하여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내가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변해버린 미래는 평행우주의 한 단면으로 남겨두고, 원래 내가 살던 세상으로는 복귀하는 경우 좌표를 지정한 차원도약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이접기를 하는 외계문명을 만나 그들과 상보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며 동시에 발전하는 방향을 모색한 것은 우리가 역사 기록 이래 처음 경험하는 일일 것입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서 전쟁을 치르며 어느 한쪽은 퇴보하고 한쪽은 발전하는 게 아닌, 이런 이색적 경험이 가능한 것은 상대 문명이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충분히 이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상대 문명이 우리보다 뒤쳐져 있었다면 힘의 의한 질서 법칙은 여느 때처럼 우리가 그들을 침략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과정이 모두의 암묵적 동의 하에 당연한 일처럼 치러졌을테죠.
우리는 표준모형을 완성하고 힉스 메커니즘을 밝혀낸 나름 고도화된 인류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의 과학 기술을 보는 느낌은 우리가 개미를 지켜볼 때의 느낌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힘의 의해 이루어지는 질서를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은 저에게 더이상 작용하지 않습니다.
연방종합과학연구소의 렉터 박사와 댄지어스 박사의 연구 끝에 최근 상용화된 텔로마이어스 임상시험의 마지막 대상이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빌론의 공중정원부터 다녀와야겠군요.
그 다음은 아마 처음 총이 발명된 10세기의 중국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