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본디 하얗고 복슬복슬한 개로써 중국 산씨성 지역의 한 작은 도시에서 백련교도가 홍건적의 난을 일으키던 어지러운 정국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는 오이라트족이 동네를 휩쓸고 지나가 황허강에 시체가 잔뜩 떠내려오기도 했다.
샘은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을 일이 없다는 게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간혹 샘을 잡아서 요리하려는 사람들의 좇음이 있긴 했어도 집요하지는 않아서 재빨리 도망을 치면 쉽사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샘보다 고기가 몇 근이라도 더 나오는 덩치 큰 들개들이 지천에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많았어도 영락제의 치세 덕분에 자바와 필리핀은 물론이고 브루나이와 네팔에서도 넘쳐날 정도의 조공이 나라에 들어왔다.
때때로 사람들이 버려대는 고기가 많아 매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었던 샘은 그것이 동족의 고기인지, 사람의 고기인지는 게의치 않았다.
타성에 젖은 채 누려온 고요하며 단조로운 삶에 더 많은 생각의 개입으로 변화를 주고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강변을 걷다가 잘 자라 쓴맛이 가신 쇠비름을 오랜만에 뜯어먹게 되었다.
강 건너에서 목줄을 찬 개들이 질투에 차 짖어대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가운데, 옆으로 길게 누운 해와 만난 황허강이 금빛으로 사정 없이 부서지면서, 물이 얕은 데서는 고양이들이 물고기들을 낚느라 사정 없이 앞발을 휘두르고, 저 멀리선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깡마른 중년 남성이 넉가레로 볏단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허리를 잠깐 편 남성이 샘을 잠시간 쳐다보다가 성큼성큼 다가와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샘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냈다.
샘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마저하는데 남성이 철제 넉가레를 높이 들었다가 샘의 몸을 내리찍었다.
왜 첫만남에 그 남성이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했는지 번뜩 이해가 되는 찰나, 한 번 더 가해진 무거운 충격에 샘의 눈 앞에 시커먼 장막이 드리워졌다.
남자는 기절한 샘의 몸에 허겁지겁 밀가루 반죽을 입히고 기름솥에 샘을 넣고 튀기기 시작했다.
튀김옷이 노릇노릇하게 색을 낼 때 즈음 정신을 차린 샘은 가까스로 도주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요리로 바로 내놓아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튀겨져 거동이 꽤 불편해졌고 자가치유력도 더뎌졌다.
다행인 것은, 넉가레로 샘을 내리친 중년 남성이 먼저 샘을 데쳐서 털을 뽑아야함을 잊어 털이 고스란히 남은 채 튀겨졌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샘을 먹으려하지 않았다.
기름의 열기로 샘의 잇몸이 모두 뭉그러졌고 이빨도 다 빠져 고기도 쇠비름도 더이상 씹을 수가 없었다.
혀도 바삭하다 못해 거의 다 깨지다시피하여 물을 핥아올릴 수가 없어서 머리를 반은 물에 담궈서야 숨이 막힌 채 코가 맵도록 들이키듯 목을 축일 수 있었다.
움직이는 음식같은 샘의 모습에 근처에 살던 고양이들은 샘이 측은한지 이따금 잡아올린 생선 등을 으깨어 샘에게 갖다주기도 했다.
샘은 고양이들이 더 많아질 때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동료 개들이 나쁜 일을 겪을 때마다, 그리고 죽을 때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 항상 고양이들이 몰려와 구경하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포구에 설치된 병참의 첨탑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가슴에 댄지어스 톨맥이라는 명찰을 단 남성이 마치 샘을 원래 익숙히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검정색의 물건을 꺼내어 샘의 모습을 관찰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너무 튀겨져 색깔이 갈색으로 변한 샘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은 샘을 “튀김 강아지”라고 부를 뿐이었다.
샘의 원망은 자신을 튀긴 중년 남성, 남성을 낳아 기른 부모, 그 조상, 이웃 주민들, 현재의 정세,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 병든 인간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커져갔다.
그러나 관절마저 튀겨진 샘은 날이 갈수록 무기력하게 바스러져 갈 뿐이었다.
어느 해지던 때, 강변에 엎드린 채 황허강을 바라보던 샘은 숨을 거두기 전 하얗고 복슬복슬했던 자신의 모습과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실컷 울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그날의 일몰만큼은 유달리 붉었다.
굴러떨어지는 눈물은 마치 핏빛과도 같았고 황허강도 샘의 슬픔에 동감하듯 핏빛으로 거대하게 부서졌다.
눈물을 다 쏟아낸 샘은 “가이까이꽉꽌꽝”이라는 단말마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1417년, 샘의 몸뚱아리는 썩어서 흔적을 감췄지만 눈물은 대지에 스몄다.
한동안 그 자리를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다가와 한참을 앉아있다가 떠날 뿐이었다.
(사진의 하단 테두리에는 “육백년 전 사망한 샘”이라는 메모가, 사진의 뒷면에는 “튀겨진 후의 샘과 그에게 으깬 생선을 가져다 준 고양이”라는 메모가 기재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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