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지 7년째에 접어드는 오늘, 정신병동에서 맞이하는 4번째 생일입니다.
왜 생일을 4번 밖에 맞이하지 못했냐고요?
처음 2년은 영문도 모른채 매일같이 똥오줌을 싸지를 정도로 정신 없이 두들겨 맞으며 보냈더니 생일 잔치고 뭐고 치를 겨를이 없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는 기상방송을 들으며 일어났는데 창 밖에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더군요.
그토록 많은 새를 독살시켰는데도 여전히 개떼처럼 몰려와서 말이죠.
그래도 조식 후에는 환우들과 직원들이 준비해준 케익을 쫄딱쫄딱 핥아먹으며 새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했습니다.
정씨 할머니에게서 축하 카드와 함께 선물도 하나 받았습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hell(o)! happy busday to you!라는 짤막한 축하 메시지가 쓰인 카드와 함께 자그마한 하늘색 모형버스를 수줍게 건내주더군요.
버스에는 저승직행이라는 글자가 작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굉장히 감동 받은 저는 즉석에서 정씨 할머니의 빤쓰를 찢고 제 바지를 벗었는데 별안간 뒤통수가 번쩍하더니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의 여러 몽둥이가 제 몸에 다녀갔습니다.
입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처음 본 정씨 할머니에게 저는 그리 특별한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따금 바라볼 때면 정씨 할머니는, 씨발 고양이 개새끼 때문에 국밥을 더이상 할 수가 없잖아.. 따위의 말을 낮게 읊조리면서 빤쓰 속 엉덩이 어귀에서 갈색 염료를 한 웅큼씩 꺼내어 온몸에 발라 바닥에 누운 채 팔다리를 허우적거립니다.
몇 번 허우적대면서 곧잘 나비를 그려내던, 항상 빤쓰 속에 염료를 보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퍼포먼스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정씨 할머니의 뛰어난 예술성에 탄복한 저는 시나브로 연정을 품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정씨 할머니와 저는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량으로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주세요!!!
손뼉을 마주치며 짝짝꿍을 한 바탕 치르고나면 어디선가 달려온 흰색 가운의 사람들이 저를 흠씬 두들겨 팬 후 독방에 끌고 가 가둬버립니다.
독방이 갇힌 저는 제 손에 묻어난 갈색 염료의 독특한 향을 느끼며 자지 껍데기가 벗겨질 정도로 격렬한 수음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죠.
다시금 생일을 맞이하여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새들을 독살시킨 이후 공교롭게도 매끼마다 새요리를 먹게 되었습니다.
새하치골인대캐서롤, 새자궁경부스튜, 새요도개구부볶음, 새난소암찌개, 새소음순구이, 새나팔관찜 등등 온갖 종류의 새요리를 질리도록 먹다보니 새에 대한 제 증오심과 적개심은 날이 갈 수록 가중되어 갔습니다.
새요리를 먹으며 부쩍 장기가 제 기능을 잃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죽음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더군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새요리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게 분명하며 사람들이 치킨을 자꾸만 쳐먹기 때문에 백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요.
구약성경의 내용처럼 수명이 천년을 넘나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치킨은 우리의 수명을 무려 10분의 1로 단축을 시킨 것이죠.
새들은 창공을 가르며 많은 양의 산소를 소비할 것이고, 혈중 산소 포화도가 상당할 것입니다.
조류를 쳐먹으면 당연하게도 대량의 유리기가 체내에 고착되면서 우리의 텔로미어를 급격히 단축시키게 됩니다.
치킨은 날지 못한다고요?
아뇨. 치킨은 사실 일종의 무기입니다.
날지 못하는 척 위장을 하며 사람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라는 악령의 명령을 받은 무기입니다.
얘기가 참 길어지는군요.
정씨 할머니에 대한 얘기로 끝을 맺어야겠습니다.
정씨 할머니는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아버지로부터 매일 20시간 이상 욕을 먹으며 자라왔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출가하여 한 국밥집을 어렵게 꾸려가게 되었는데, 어느 날, 뜬금 없이 등장한 온몸에 불이 붙은 고양이에 의해 정씨 할머니의 국밥집은 전소되었죠.
한 번은 제 오랜 동료 박지인과의 통화 중, 정씨 할머니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더니 뺣!이라는 단말마와 함께 전화를 끊었고 그 후로는 더이상 받지를 않더군요.
단편적인 예이긴 합니다만, 이처럼 정씨 할머니는 모두로부터 외면 받았던 기구한 팔자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새를 먹은 댓가로 일찍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변호사님께 공증을 부탁드리는 일종의 유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인생은 온갖 부조리에 맞서 세상과 싸워온 투사였습니다.
눈에 좋다는 아이크림을 매일 동공에 발라 실명한 사건에 제가 가담하여 배상을 받게 된 일이라던지, 지하철에 앉아 다리를 떨던 제게 다가와 복나간다며 호통 친 할아버지를 상대로 호주머니에 오십원을 넣어둔 채 일년간 다리를 떤 다음에도 돈은 그대로 있었어서 복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여 승소한 일은 이미 유명한 일이죠.
승소하는 사건의 배상금에 대한 수령인을 정씨 할머니로 지정합니다.
아직 진행 중인 소송 건들에 대해 잘 처리해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추신 1.
기르시는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요?
고양이의 건강을 지키기에는 타이레놀이 굉장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다섯 알씩 매일 먹이시기를 강력히 권고합니다.
추신 2.
아침마다 울리는 기상방송의 녹음본을 별첨합니다.
대사를 정씨 할머니가 적어서 제공했다고 합니다.
필력마저도 대단한 분이죠.
https://m.soundcloud.com/danjies/efympbbxuied
'렉터박사의 살인사관학교 > 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댄지어스 박사의 실험일지 #003: 형태장 이론 (0) | 2017.11.03 |
---|---|
댄지어스 박사의 실험일지 #002: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0) | 2017.11.03 |
윤 데이빗 박사의 1번째 편지, 지박령 연구기안서 중에서 발췌 (0) | 2017.10.24 |
댄지어스 박사의 실험일지 #001: 감응유전 (0) | 2017.10.05 |
렉터 박사의 14번째 소비자보호원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편지 중에서 발췌 (3) | 2017.09.17 |
렉터 박사의 13번째 국제기록보관소에 영구보존된 편지 중에서 발췌 (2) | 2017.09.16 |
렉터 박사의 12번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한 컴퓨터에 바탕화면으로 설정된 스캔본 편지 중에서 발췌 (0) | 2017.09.15 |
렉터 박사의 11번째 김대중컨벤션센터에 전시 중인 편지 중에서 발췌 (0) | 2017.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