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7월 18일, falange팔랑헤당을 필두로 왕당파, 파시스트, 까를리스타, 이탈리아, 포르투갈, 나치 독일 등이 연합한 국민군은, 프랑코의 측근인 에밀리오 몰라 장군의 지시에 따라 모로코에서 반란을 일으켜 본격적인 스페인 내전이 발발합니다.
1937년 3월 7일, 나치 독일은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재해석하여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당시 스페인의 장군이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원하고자 콘도르 사단을 스페인에 파병합니다.
동시에 하에51 복엽 전폭기가 주력 진격 공군으로 파병군과 함께 투입됩니다.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도시인 게르니카에 주둔했던 공화파 바스크군의 20여개 대대가 서남쪽으로 후퇴 중이었고 이를 프랑코파 군대가 추격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코, 이탈리아군, 나치군은 공화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포위망 안에 가두기로 결정하고, 이탈리아 공군과, 나치 독일 Luftwaffe루프트바페;공군은 다양한 전폭기를 동원하여 게르니카를 폭격합니다.
1939년 4월 1일, 프랑코 군대에 의해 수도 마드리드가 함락(정확히는 완전 함락은 아닌)되면서 프랑코는 사실상 스페인의 caudillo까우디요, 즉 군사독재자가 됩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스페인에의 모든 내전이 끝납니다.
이때까지 스페인에서 전쟁에 의해 죽은 사람의 수는 최소한 200만 명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내
전 기간 동안 나치 독일은 프랑코의 국민군에게 군사 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스페인 광산의 채굴권을 스페인에게 불리한 불평등 조건으로
획득했고, 동시에 나치 독일의 공군원수였던 헤르만 괴링은 국민군 몰래 공화군에게 무기를 팔아먹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약아빠진 행태 덕분에 스페인은 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키게 됐지만 말입니다.
재미있는 여담은, 내전 발발일인 36년 7월 18일과 종전일인 39년 4월 1일을 연월일 별로 더하면 75년 11월 19일, 즉 프랑코가 사망한 날짜입니다.
각설하고 주제 중 하나가 게르니카인만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할까 합니다.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을 읽으면서 몇 가지 자료들을 검색하여 비교해보니 낭설이 꽤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일
례로 한국의 모 방송과 언론에서는 게르니카 폭격 사건을 두고 '무기 시험을 위해 작전과 무관한 마을을 폭격했으며,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하에51 폭격기를 동원하여 시장에 응집한 17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근거가 불충분한 자료들을 기정사실인양
송출했는데...
사실 게르니카 지역은 공화군의 퇴각로가 있던 교통 요충지로 상당수의 공화군이 방어를 위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나치군과 국민군의 실제 목표는 퇴각로에 있는 다리였습니다.
선제 폭격기들은 다리를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고 주변에만 폭탄을 투하했고 후속 폭격기들이 그 때문에 발생한 흙먼지로 목표를 제대로 못 잡고 '교량이 있을 것 같은 위치'에 3차에 걸쳐 대량의 파상 폭격을 했습니다.
당시만해도 신기술이었던 비행술은 기술적, 운용적 측면에서 많이 불안정했던 시대였고, 투하 방식도 현대와 같은 유도 방식이 아닌 가늠 방식이었습니다.
즉, 의도적으로 민간인 지역을 폭격한 것이 아닌 오폭이었다는 얘깁니다.
해당 지역에서 공화군 후퇴를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고, 탄약의 여유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폭탄 실험을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또한 프랑코파가 우세를 점해가는 상황에서 곧 프랑코가 통치하게 될 지역의 산업 기반과 공업 능력을 파괴하고 저하시킬 일말의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치가 동원한 폭격기는 하에51, 하에111, 융커스 요트우52, 도르니에르 데오17입니다.
상술한 선제 폭격기들은 이탈리아 공군의 수송, 폭격 겸용기인 에쎄에메 79기였고, 3차 공격 때에는 나치 독일 공군의 하에와 함께 이탈리아 공군의 에오로노띠까도 편대 비행을 하며 폭격을 했습니다.
따라서 게르니카 사건의 폭격기들은 하에 51기만이 아닌 다양한 기종과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으로 구성되었으며, 엄호기까지 보태면 베에프 109베도 포함됩니다.
바스크 자치정부의 최초 공식 발표한 사망자 수는 1700명이 맞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스크 자치정부는 국제 여론을 의식하여 사건을 부풀려 발표했고, 이미 모든 군병력이 퇴각하여 민간인만 남아있던 도시에 당도하던 해외 특파원들에게 감정을 호소하기 꽤 좋은 타이밍이기도 했습니다.
1970
년대 공개된 기습공격 수행계획 문서와 주민등록 문서와 현재 거주민과 조상과의 관계 등을 면밀히 재조사한 결과에서는, 폭격기는
민간인 거주구역을 의도적으로 타격하지 않았으며 정확히는 3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폭격을 받은 그 해, 피카소는 그 지명을 따 작품명에 적용하고 대벽화를 그려냈습니다.
때마침 이 모든 프로파간다들이 버무러진 시류에 잘 편승했던 사건이자 지역이자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후 범지구적 이데올로기 확산에 힘입어 공화파가 뿌린 마타도어와 그들에 의한 민간인 거주지 폭격 사례들은 거의 잊혀지고 맙니다.
게르니카 벽화는 스페인 공화정부 사절단이 피카소를 직접 방문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 예정된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 벽화 제작을 의뢰한 것을 피카소가 승락하면서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조국의 비보를 접한 피카소는 5월 10일부터 6월 15일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만에 작품을 완성했고, 게르니카 지명을 그대로 따 작품명에 적용했습니다.
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에 달하는 이 대벽화는 만국박람회를 비롯,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지면서 게르니카 사건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입니다.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스페인으로의 작품 반입을 거부하고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이 이룩된 후에 반드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할 것을 조건으로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 방식으로 제공합니다.
1981년에야 스페인에 반환되어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보관상의 문제로 소피아 왕비 미술관으로 옮겨졌습니다.
흑색, 흰색, 회색, 갈색 등의 무채색의 연출은, 흑백으로 출간되던 당시의 신문상 사진들처럼 충격적인 게르니카의 사건을
강렬한 흑백 대조의 사진을 처음 접하는 순간의 인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며, 피해를 입은 도시에 만연한 불안감을 전달하기 위해
날카로운 데포르마시옹과 이질감을 주는 삼각형 구도를 차용했습니다.
전시된 게르니카를 본 한 독일군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이 그림을 그렸소?"하고 묻자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라고 대꾸했다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의 손을 빌었으되 분노를 촉발시킨 이는 독일군이었으니 말입니다.
끝으로, 앤터니 비버의 저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게
르니카 사건(397쪽~) 서술을 보면, 민간인 거주구역 폭격은 오폭이라고 주장한 것은 콘도르 사단 전역자들이며, 기상상태에 대한
각자의 증언도 다르고, 최초 폭격으로 대인탄과 소이탄이 도시 중심가에 투하되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국적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지 않았고, 콘도르 사단 전역자들의 증언 출처를 정확히 명시하지 않은데다가, 리히트호펜의 기록에는 당시
나치 독일 공군의 폭격의 목적은 정확히 공화군의 후퇴 저지와 교란이 주목적이라고 기록되어있다는 부분도 첨부했습니다.
읽다보면 실제로 일어났던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역사해설서라기보다, 약간은 공리주의 사상에 치우친 저자의 사상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묻어나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팩션 같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가끔은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에 대해 전무할 정도로 상세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책입니다.
그저 밥술만 뜨는 일개 독자인 제가 반찬이 맛있니 없니 교만을 떨 입장은 아니지만, 상기와 같은 몇 가지 고증 오류로 인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잘 판단하여 소화해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의견을 전합니다.
'왕너구리의 메세타 고원에 불 붙이기 > 미술관조깅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마망' (0) | 2018.09.09 |
---|---|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1) | 2018.09.05 |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연회에 참석한 유디트 (0) | 2017.10.25 |
고야의 '1808년 5월 3일' (0) | 2017.01.18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0) | 2017.01.18 |
프라도의 모나리자 (1) | 2017.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