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내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불러주셨고, 누구보다 설렁탕을 맛있게 끓여 기품 있게 내어주셨던 친구의 어머님이 금일 작고하셨다.
만우절에 거짓말이면 좀 좋겠느냐만 목숨이 붙고 끊이는 것은 날짜를 가리지 않으니, 다만 어머님의 사후 여정이 안녕하시기를 기원한다.
만우절에 거짓말이면 좀 좋겠느냐만 목숨이 붙고 끊이는 것은 날짜를 가리지 않으니, 다만 어머님의 사후 여정이 안녕하시기를 기원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한 사람의 생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에겐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개중 하나는, 세상이 마치 내 이상의 그림을 그릴 도화지라고 생각하던 호기가 넘치던 때에 만난 한국에서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꽤 바쁜 의대생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일말도 아낌 없이 자신의 값비싼 시간을 모조리 나에게 투자했다.
청춘 드라마에 나올 듯한 온갖 이벤트와 배려로, 보통 -금전적으로- 주는 입장에 있는 남자인 나를 행복이 과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항상 고맙기는 했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나중에는 그것이 일상처럼 되다 보니 되려 시들해지기까지 할만치 익숙해져 버린 아가페에 가까운 사랑이었다.
서적 중에서도 시집을 유독 좋아했던 그녀는, 각자의 소일들을 조금씩 미뤄두고,
봄에는 창경궁에서 진달래를 즈려 밟으며 김소월의 시를 내게 읊어주었고,
여름에는 홋카이도의 도야 호수에서 노 젓는 배를 타며 한용운 시인과 유미성 시인의 시를 읊어주었고,
가을이면 청계산을 오르며 산행가 한시를 읊어 주었고,
그러다 길에 사람들이 목도리를 두르기 시작할 무렵에는 나에게 이별을 통고했다.
소설 양철북을 읽고서는 내가 북 치는 오스카 같다며 빛나게 봐주던 그녀가, 그녀의 생일을 나흘 앞두고 헤어지자고 했을 때, 이별을 통보받는 입장에 서툴렀던 젊은 나로서는 나의 청춘은 여기서 끝이 났고 목숨은 붙어 있어도 내 몸뚱어리의 어느 한쪽은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난 그녀에 대한 온갖 그리움을 원망과 저주로 대신하고 깊은 무기력의 나락으로 빠져버렸다.
학부 의대생에게 당연시 여겨졌던 열쇠 세 개가 없어 까였나 하는 통속적인 생각과 오해로 난 자기모멸감과 싸워야 했고 매사 면면에 어두움만 남아 누구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 채 난잡한 생활이 이어졌다.
첫눈이 내리던 그 날, 그녀의 동생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저편에선 이대거리에서 만나자는 말만 건너왔다.
난 이유도 묻지 않고 서둘러 신촌으로 이동했고, 그녀의 동생은 만나서도 잠자코 데운 두유를 건네주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이끌려간 곳은 그녀가 다니던 의과대학 병원, 그녀는 평소와 달리 학생이 아닌 환자로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그새 무척이나 깡마른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낫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서는 나를 위해 헤어진 것이었고, 나와의 이별에도, 병마와의 사투에도 시름 하는 언니의 모습에 동생이 언니를 어렵지 않게 설득하여 나를 부른 터였다.
치료에 드는 시간을 빼고서는 종일에 가깝게 거의 토를 하다시피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그녀에게 전했지만, 그녀는 병원 생활 외에는 한 것이 없었기에 그녀의 이야기보따리는 가벼웠다.
스키장에 함께 가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나중에 꼭 가자는 약속을 내게서 몇 번이고 받아내며 이제는 류동화 시인의 시를 자신에게 읽어달라던 부탁을 했다.
이번에는 다시 내가 구애를 했고, 그녀가 내 가슴 속 별이 될 때까지 반년을 더 사귀며 그때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병실에서 함께 맞았다.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너를 만나 너무 과분한 사랑을 했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과분하게 받아온 입장은 나였기에 한참을 의아해했는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몇 년이 지나 다른 여인과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서툴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비교적 사랑을 더 많이 나눠주는 입장인 경우에도, 사랑을 너끈히 받아주는 그 상대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그녀가 가르쳐준 '계산적이지 않은 사랑을 하는 방법'이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타인의 입장을 헤아림에 나태했던 나에겐 그 시기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을 대단히 큰 폭으로 재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전환기가 되었다.
물론 사랑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성숙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나누는 방식도, 그 크기도 사람마다 선천적이며 고유한 능력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 않나 싶다.
세상에 더 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기에 때론 그만큼의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질 때도 있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사랑에 비해 걸음마 수준일 것이다.
아직도 구름이 없는 밤에는 아스라이 별이 빛난다.
2014.04.01 12:04 작성된 포스트로부터 복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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