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에 관한 실험이 있다.
여닫이 문이 있는 방의 한 가운데에 사다리가 있고 그 사다리 위에는 천장으로부터 줄로 연결된 바나나 꾸러미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원숭이 두 마리가 들어서고 그들은 바나나를 집기 위해 사다리를 탄다.
한 두 발짝 쯤 올라서면 손에 바나나가 닿을 무렵에 찬물이 쏟아져 내리고 원숭이는 깜짝 놀라 사다리에서 뛰어내린다.
흠뻑 젖은 원숭이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다시 사다리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 한다.
젖은 원숭이 두 마리가 방에 머무는 사이 한 마리의 새 원숭이가 방에 들어선다.
바나나를 보게 된 새 원숭이는 사다리를 올라가지만 두 마리의 원숭이는 자기들처럼 놀랄 그 새 원숭이를 배려의 차원에서 올라가지 못 하도록 끌어내린다.
영문을 모르는 새 원숭이는 계속 해서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시도하고 젖은 두 마리의 원숭이들의 저지 또한 거세진다.
결국 두 마리의 원숭이는 포기하지 않는 새 원숭이를 두들겨 패서 포기하게 만든다.
새 원숭이도 바나나를 먹으면 안 되는 불문율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더이상 바나나를 획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계속 해서 한 마리씩 새 원숭이가 들어오고 개체수가 많아질 수록 폭력은 신고식처럼 행해진다.
나중에는 아무도 바나나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두가 문 쪽을 향해 있으면서 새 원숭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
또 다른 원숭이 실험이 있다.
아홉 마리의 원숭이에게 원숭이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예상치 못 하게 울리는 커다란 소리나 스크린에서 갑작스레 영상이 전환되어 공포감을 느낄만한 자극을 주었고 그들은 끽끽거리며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계속 해서 자극을 주었고 나중에는 일종의 적응, 복종을 넘어서 놀이, 유희와도 같은 행태를 보였다.
소리나 영상 같은 자극이 없어도 나중에는 집단적으로 그 자극을 답습하며 동료를 놀래킨다.
이 두 실험의 공통점은 집단에 따라서 실험의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고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학계의 반박을 또 한 번 반박하기 위해서, 동일 조건 하에 동일 과정을 거쳐 수 차례 더 실험을 가졌고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는 것이다.
Gary Hamel 교수의 저서 Competing for the future 참고 및 발췌.
2012.08.14 10:05 작성된 포스트로부터 복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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