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쯤인가 소라게를 집게로 건져올리는 뽑기가 한 철 유행했던 적이 있다.
기계마다 집게의 악력 세팅값이 달라 잘 뽑히는 기계는 몇 마리씩 연속해서 건져올릴 수도 있었다.
싼 값에 샀던 병아리도 곧잘 죽었고 십수 년 전 마리당 500원 하던 청거북이(붉은귀거북)도 눈병이나 빈영양으로 인한 등갑 연화로 세상을 쉬이 등졌다.
기계마다 집게의 악력 세팅값이 달라 잘 뽑히는 기계는 몇 마리씩 연속해서 건져올릴 수도 있었다.
싼 값에 샀던 병아리도 곧잘 죽었고 십수 년 전 마리당 500원 하던 청거북이(붉은귀거북)도 눈병이나 빈영양으로 인한 등갑 연화로 세상을 쉬이 등졌다.
소라게는 그래도 판 당 2천원 짜리라 지 몸값 행세 하는지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꽤 오래 버텼주었다.
다만 성장을 하면 지 고향에서는 제 몸집에 맞는 소라 껍질로 이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좁은 세상에 가둬 키우는 여건에서는 내가 소라 껍질을 구해다 주어야하는 봉사 정도는 해주어야 했다.
자주 강가나 사구에 갈 수도 없는 노릇, 몇 마리는 다행히 이사를 했지만 이사를 하지 못 하고 헐벗은 녀석들은 며칠이 지나 게으름 피우는 모양으로 시나브로 죽어갔다.
다른 동물이나 동료의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집이 없다는 사실이 녀석들에게는 죽음으로 몰고 갈만한 큰 스트레스였나보다.
생각보다 빠른 성장으로 더이상 새 집을 구해줄 수 없게 되자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봉착했다.
나는 약 2분 간의 깊은 고뇌 끝에 소라게찜을 해먹기로 결심했다.
조금 귀찮았지만 나중에는 더 귀찮을까봐 즉시 부엌에서 찜통기를 찾아헤메다가 마땅한 찜 도구를 찾지 못 해 그냥 큰 냄비에 물을 붓고 삶아 먹었다.
몽글몽글 알 벤 녀석도 있었다.
뱃 속 알까지는 미처 덜 익어서 약간 말랑하면서도 어느정도 톡톡 터지는 식감이 차라리 기대 이하인 소라게의 속살보다는 괜찮은 편이었다.
동물 학대의 정의가 무엇인가.
식물 학대는 왜 없는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돋보기로 개미들을 화형시키고 잠자리를 참수시키는 어린이들은 왜 학대죄로 처벌되지 않는가.
살아있는 생선을 능지처사 하는 일식집 주방장은 왜 처벌되지 않는가.
내가 키우던 반려동물을 삶아 먹은 나는 동물 학대자인가.
2013.01.28 10:36 작성된 포스트로부터 복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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