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슈아 신부님께.
신부님, 저는 신부님의 조언을 따르고 실천하고자, 어느 날부터 저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줄넘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햄버거 껍데기를 먹으면서 출근을 하던 도중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공격과 방어에 전념하다가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쳐맞기만 하는 게 너무 억울해서, 삐져나온 그 초등학생의 지갑을 훔쳐 가까스로 도주에 성공했죠.
연구소에 도착한 저는 훔친 지갑을 뒤지다가, 사용한 콘돔, 고양이 가죽 몇 조각, ‘고양이에게 먹여야 함’이라는 메모가 적힌 타이레놀 약봉지, 말린 소음순, 육수용 멸치, 1864년 발행된 스타벅스 쿠폰,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하르게이사 소재의 둠살롱 명함,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모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왜 2017년인지 모르겠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인천 신세계 백화점 1층 화장실 대변기에 앉아 똥을 싸고 있더군.
짝퉁 노스페니스 바람막이가 본인의 몸에 착용되어 있었으며, 손목에는 동암재활학교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팔찌에 내 이름이 매직으로 적혀있었다.
먼저 기억을 더듬어 집구석에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는 음성만이 들려왔다.
타는 듯한 갈증으로 담배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이자 <DOOM SALON>이라는 명함과 구겨진 살인사관학교 입학원서가 바람막이 주머니에, “1417년 사망한 샘”이라는 메모가 적힌 개의 사진이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일단 본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자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보답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정이며 분명히 막상 생각해보면 귀찮으므로 그만두게 될 것 또한 당연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누군지 추정할만한 한 문장이 내 머릿 속에서 계속 되내어진다는 것이다.
“내 이름은 박지인, 57살이고 서울 인천 대전 부산에 동시에 거주한다. 취미는 길에서 똥싸는 놈 주저앉히기이다.”
공교롭게도 쪽지 속에 등장하는 박지인이라는 이름은 제가 재직 중인 연구소의 상임이사이자 제 오랜 동료인 박지인과 같습니다.
하여 저는 제 동료 박지인에게 무언가 짐작될만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을 요청하였는데 갑자기 제 얼굴에 침을 뱉고 물건을 부수기 시작하여 별다른 특이사항을 알아낼 수 없겠더군요.
저는 저를 두들겨 팬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제가 두들겨 맞았던 그 거리에서 꼬박 두 달을 기다리면서 지나가던 동네 고양이들에게 일일이 설빙 인절미 빙수를 접대하며 인상착의를 설명 후 행방을 물었으나 건질만한 정보도 없었고 말입니다.
일련의 상황과 쪽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저를 때린 초등학생은 그저 초등학생의 외모를 갖춘 오십대 중년이며, 그가 자신의 시대를 떠나게 된 원인을 제가 제공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저는 이 수수께끼같은 상황을 일단락 짓기 위해 다음 휴가시즌에 소말리아로 떠나는 비행편을 예약해두었습니다.
바로 그날부터였을까요.
잠을 자려고 누울 때마다, 그 지갑 속에서 발견한 한 사진 속의 개, 바로 육백 년 전 사망한 샘이라는 개의 영혼이 자꾸만 저에게 살인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나흘 전부터 잠도 자지 않고 밥도 걸러가며 신부님께 전화를 일 분에 한 번씩 드리고 있지만 당췌 받지를 않으시더군요.
너무 화가 나서 가까스로 지친 몸을 이끌고 압축배트를 소지한 채 사제관의 문을 개박살내고 들어갔지만 굉장히 육중한 철문이 이중으로 잠겨있는 바람에 들어가지도 뵙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혹시 제가 영성체 시간에 나체로 꽹과리를 쳐서 화가 나셨다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며, 길 잃은 양떼를 돌봐야할 목자로써 올바른 태도를 지녀주시길,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이 편지를 보내오니 부디 빠른 시일 내로 답장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해서 말인데, 이 편지가 수취거부 등으로 반송된다면 브라우닝 산탄총과 케이나인 자주포 전차를 몰고 가서 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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