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다니다 보면 내가 알던 사람들과 놀라울만큼 닮은 사람들이 있다.
잠시간 그 사람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부풀다가도 의미 없다고 속단하며 쉬이 팽게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알아본다는 것의 의미는 지금의 나에게는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친구를 몇 년만에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도 뛸 듯이 기쁜 일일 것이다.
그게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 싶다.
내 곁에 항상 있는 것들과도 너무 멀어서 다녀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당장 오늘처럼 내 삶이 싫었던 날은 없었기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를 포기했다.
난생 처음으로 가져본 음반은 어릴 때 어머니가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건내준 키릴 콘드라신 지휘 하에 녹음된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이었다.
그후로 백 장이 넘는 클래식 명반들을 받아 들었다.
어제는 어렵게 잠이 들었는데 꿈에 길섶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하얗고 가녀린 꽃이 피어있었는데 꽃이 진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꾸만 흐려져 나는 자주 눈을 비비다가 깨어났다.
꿈에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보고싶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자꾸 비비다가 깨어났고, 하얗고 가녀린 꽃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아케보노소우였다.
일어나 앉아서 쇼스타코비치 5번을 듣다가 왜인지 거부감이 들어 곧 꺼버렸다.
이제 나에게 어머니의 의미는 더이상 잃을 것도 없는 세상과도 같다.
곧 일출이 되었다.
피곤에 반쯤 묻힌 미녀가 옆에, 또 그 옆에는 불쌍한 작은 미녀가 잠들어 있었다.
조금 열린 창문에서 햇빛이 다가와서 먼저 큰 미녀에 얼굴에 볕이 들었다.
하지 않은 얘기들이 너무 많아 잠시간 정리를 해볼까 하다가 그마저도 관두었다.
나는 마음이 가난하거나 입이 없거나 어딘가 분명히 고장나있는 게 틀림 없다.
나는 오늘까지를 박제한다.
그리고 미녀들의 지성과 정신을 존중하면서 나는 머지 않아 실패와 화해한다.
마침 바닥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발을 굴러 올라갈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더 잘 실패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볼 참이다.
겨울이 와야한다면 그대로 둘 것이다.
결국 봄은 오고 나는 그때 캠핑카를 몰고 한적한 들판에 나갈 것이다.
벽돌 쌓고 불 지펴서 산나물과 두부 넣고 된장찌개를 하나 끓여서 멋진 상을 차려볼 것이다.
막 수저를 뜰 참에 santana의 let me love you tonight 울려나올 것이다.
'넣기소년의 신변잡기 > 탕비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총튀김 (0) | 2018.03.26 |
---|---|
별똥별 (3) | 2018.01.25 |
기억의 소거 (1) | 2018.01.07 |
俺はとことん止まらない。 (0) | 2017.11.22 |
번식 (0) | 2017.09.10 |
K라는 작자가 있었다 (0) | 2017.09.10 |
20세기 (1) | 2017.09.10 |
그때 분명히 그랬다 (0) | 2017.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