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별똥별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열 살 즈음 읽은 알퐁스 도데의 시, 별을 통해서다.
스테파니에게 별자리의 전설과 별똥별의 긴 여운을 이야기하던 목동의 모습이 꽤나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알프스의 밤하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떨리던 시절이었다.
나의 별자리는 황도 12궁 기준으로 첫 번째인 양자리다.
죽을 위기에 처한 프릭소스와 헬레를 돕기 위해 제우스가 보낸 하늘을 달리는 황금양이 남은 자리이며 전쟁의 별인 화성이 수호성으로 지정된 자리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 인생 역시 최근까지도 끝없이 지칠 수 밖에 없었던 작은 전쟁이었다.
별똥별을 가장 많이 본 것은 프랑스 남부 페르피냥의 테트 강변에서였다.
남쪽 피레네 산맥 쪽으로 펼쳐진 별들의 향연에 망연자실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깜깜한 밤하늘의 별들은 공부에 지쳐 감성이 부족했던 그 시절 팍팍한 생활을 살아가게 해주는 참 소중한 의미 중 하나였다.
멀리 지평선 위로 꼬리를 그리며 사라지는 별똥별을 볼 때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소원 하나를 실어보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별을 생각하면 빼어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마지막 비행, 별들 사이로 잠적해버린 그를 생각해본다.
그는 독일 공군 비행사에 의해 격추당해서 죽었음이 공식화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격추시킨 독일인은 그의 열혈팬이었다.
그래서 지금 어린왕자의 별에는 장미와 화산과 우편배달비행기가 한대 덩그러니 놓여있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별똥별은 별의 눈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멍한 눈 들어 밤하늘 사이로 실려보낸 그 아픔의 한숨들을 간직했다가 우리가 모든 잠든 한밤 중 몰래 다시 흘리는 별의 눈물이다.
스물 두 살의 나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이름도 적어두지 않은, 아예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전해질 운명이 아닌 편지였다.
내가 직접 건내주기 위해 지갑 속에서 근 반년을 보내다 결국은 자신의 본분을 잊은 편지다.
교제 중인 학우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는데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내가 지닌 모든 미사어구를 총동원해 머리를 쥐어짠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파스텔톤으로 노을 지는 바다가 그려진 편지지와 봉투에 심혈을 기울여 쓴 글씨체, 아마 숱하게 고쳐 쓰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조르쥬 무스타키의 방랑한 음성이 어쩌구 하는 구절도 적었는데.. 뭐랄까, 그냥 웃기다.
그 편지를 건내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읽어든 그 날은 내 나이 스물 둘의 마지막 날이었다.
스물 둘, 파릇파릇한 젊음을 왜 나는 인정하기 싫었을까.
아마도 아직 무언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지나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스물 둘이 지나는 마지막 날이 상당한 괴로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인정하기 싫었던 이유?
글쎄,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찬란하지 않을 수 없고, 괜히 실소하게 만드는 작은 일상에서 출발했다.
랭보.. 신문 한 모퉁이에 자리한 이 시인의 한마디에 다소 위축된 것이다.
‘스물 셋에 이룬 것이 없다면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비슷한 내용의 글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방황하는 젊음에게 이보다 처참한 말이 또 있겠는가.
나의 스물 둘의 마지막 날은 랭보의 이 말을 곱씹으며 전해지지 못할 편지와 함께 비오는 맥주집에서 저물다가 나는 끝내 수취인의 이름을 별똥별이라고 적었다.
나는 별똥별의 대중이 가진 기복적 의미에 사랑과 증오를 거듭하다가 그녀와의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에 끝내 증오로 고착시켜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 수취인은 증오스러운 별똥별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한때 정말 사랑했던 어린 왕자라는 책을 나는 더이상 읽지 않고, 내가 좋아하던 별들도 이제는 더이상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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