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K라는 작자는 나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삼십년 가까이 교류해온 사이로써 사실 나와 그를 연결시켜주는 공감대라던가 그런 것은 없었다.
사는 곳도 비교적 멀었고, 취향도 제각각이었으며, 교류하는 친구들도 모두 달랐다.
단지 어렸을적의 몇 개월을 미군부대 내에 있는 한 학교의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한 사이라는 정도.
2.
어느 날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어항에 넣을 물고기를 사러 가게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장대비가 쏟아붓기 시작하여 굉장히 화가 나있던 차에, 우산을 쓰고 어디론가 가고 있던 K가 와서 우산을 씌워주었다.
분노를 삭히고자 K에게 물고기를 함께 밟아 죽이자고 제의했고, K가 아무 말 없이 거들어준 게 우정의 시작이었다.
그는 나의 충실한 공범이었고 암묵적인 동조자였다.
물고기를 다 밟아 죽이고나서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같이 물고기를 밟아주던 K에 대한 고마움과 동류 의식으로 난 참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물고기를 밟아 죽이면서도 아버지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K가 무슨 생각으로 물고기를 밟았는지는 아직 안물어 봐서 모른다.
3.
비교적 초창기엔(다시 말해 어린 시절엔) 둘 사이에 딱히 뭔가 정신적 카테고리를 공유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없었다.
둘이 뭘 하던간에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느낀 건 익숙한 지루함과 지루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안도감, 그렇기 때문에 다시 지루해지는 묘한 순환 고리 뿐이었다.
4.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 느꼈던 중학생 때, 나는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공통분모를 찾아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K를 떠나거나 K가 나를 떠나갈지 몰라.
5.
그런 까닭없는 절박감이 절정에 달할 무렵.
다짜고짜 K의 학교로 찾아가서 수업 끝나고 나오는 그놈에게 물었다.
사실 뭘 물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뭘 물어보면 좋을지도 몰랐다.
그놈의 학교로 찾아가기 위해 엄마 차를 훔쳐서 20분 정도 밟아댔다.
그리고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어봤다.
나: 넌 딸딸이칠 때 자지를 왼손으로 잡니 오른손으로 잡니?
K: 그건 왜?
나: 아 씨발 빨리 말해 나 시간 없으니까.
K: 나 왼손...
나: 어 나도 왼손인데...
6.
자지를 오른손으로 잡는지 왼손으로 잡는지 따위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다.
만일 녀석이 자지를 오른손으로 잡는다고 말했던들.
"그럼 난 왼손. 넌 오른손. 우리 이제 공평한거지?"라고 했을지도.
만일 자지를 어느 손으로 잡는 문제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 질문 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헤비메탈을 싫어하는데 넌 왜 블랙사바스를 즐겨듣니 따위의 질문이었다면?
어쨌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흐뭇하고 기뻤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던 말던 K를 꼭 안아줬다.
녀석은 알았을까.
그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요즘의 K는 더이상 딸딸이를 치지 않는다.
자지를 왼손으로 잡는 공통점 외에도 그 이후에도 우리는 수많은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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