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사지가 뜨거워 뒈져버리는 나같은 경우는 술고래 상대가 되어드릴수가 없겠다.
겨울은 정말이지 짜증난다.
그래도 여름엔 시원한 맥주라도 쳐먹고 공원에서 자빠져서 보는 하늘의 맛도 있었는데 말이다.
겨울은 나를 죽인다.
겨울은 나를 끝없이 영락하게 만든다.
좋지 않은 일은 끝없이 일어난다.
더 좋은일을 생각하며 위로하며 살아야겠지.
0.
5살때 였던가.
나는 너무 작고 힘이 없어서, 그리고 유치원의 유일한 동양인이라서, 나는 곧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린이는 절대선이라는 어른들의 말과 내가 경험한 괴롭힘 사이의 부조리로 성악설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게 패배한 이야기가 떠올라 한 친구를 약올리며 도망치는 척 하다가 절묘한 타이밍에 유치원 정문에 설치된 철문을 있는 힘껏 닫아 그 친구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아니, 잘린 손가락을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두 손가락은 으깨졌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음 주에는, 수업 시간에 연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척 하다가 뾰족한 연필 심으로 다른 친구의 눈물샘에 푹 담궈버렸다.
모두들 눈에 박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가해자였던 나는 울지 않았다고 기특하다고 사탕을 많이도 얻어먹었다.
1.
2학년 혹은 3학년때 담당 선생에게 호되게 훈계를 당한적이 있었다.
정작 내가 왜 혼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이유는 옆자리 아이의 코딱지 파는 걸 보고 2학년 혹은 3학년짜리 어린이가 맨 앞자리에서 큰소리로 웃었기 때문이었다.
2.
어린 시절은 정말 아름답다.
나도 어린 시절은 참 아름다웠다.
어린 시절 꿈은 인디애나 존스같은 멋진 탐험가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께서 녹음기에 대고는 나의 육성을 녹음해주곤 하셨다.
"커서 뭐가 될 거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멜빵바지에 쭈삣쭈삣 부끄러움을 타며 '탐험가요'라고 했던 것이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
라디오에 내 목소리가 녹음되어 틀어보면 내 목소리가 재생되는 것이 그렇게도 신기했었다.
무슨 날이었었는지 어머니의 정장 비슷한 옷과 비단결같은 머리, 화창한 날씨, 커다란 안방을 걸어다니면 쭉쭉 미끄러지는 하얀 마룻바닥.
툭하면 수성펜으로 낙서를 해댔던 옷장, 높디 높던 집 천장, 항상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던 창고, 마당에 있던 작은 꽃밭, 그런 것들이..
신기하게도 죄다 어제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난다.
잊어버리기전에 그림으로 그려놓고 싶은 기억이다.
3.
교실 뒷켠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키우고 있던 자라를 모조리 밟아죽였다.
징그럽다는 생각은 안 했다.
불쌍하다는 생각 또한 안 했다.
4.
어린시절 프라모델 조립을 즐겼다.
아버지께서 방바닥에 대고 칼로 자르면 바닥 기스나니까 밑에 뭐 깔고 하라고 하셨다.
혼날 것에 당황한 본인은 생각 없이 허벅지 위에 놓고 프라모델 부품을 칼로 잘랐다.
허벅지가 칼에 찢어져 방바닥이 피범벅이 되었다.
찢어져 벌어진 살에 피가 솟아나기전에 분명 사과같아 보였다.
사과가 먹고 싶어져서 치료를 받고 사과를 사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거라 여겨졌던 그 흉터는 이젠 흔적조차 없다.
5.
브루스 리의 쿵푸 영화를 본 다음 날이었다.
싸우기로 작정을 하고 누구인지도 기억 안 나는 친구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냥 달려들었으면 될 것을 먼저 주먹을 날리면 그것을 눈으로 보고 피한 후 멋있게 패겠다는 생각을 했다.
존나게 약올려서 주먹이 날아오길 기다렸다.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보기는 커녕 엉겁결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존나게 숙여 피했다.
그후 존나게 밟혔다.
6.
어린 시절 학교 부설 성당에 다녔었는데 그 성당 겨울 모임 때의 기억이다.
섹스의 존재는 알았었지만 포르노 영화는 못 접해보고 사진만 접해봤던 아주 순진한 어린시절.
순수하게 노래부르고 놀던 형아 누나들이 하나 둘씩 잠에 골아 떨어지길래 나도 잠들어야 할 것 같아 잠을 청했다.
방은 존나게 큰 방이 두 개, 남녀 방이 따로 있지만 다같이 어울려 잤다.
처음 간 단체 여행에 들떠 잠이 올까 안 올까 하던 무렵 어떤 형아가 슬그머니 일어나 어떤 누나 침낭에 도킹하더니만 섹스를 했다.
처음으로 섹스에 사운드와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그 둘은 한참을 중얼대며 삐질삐질 울었다.
그 눈물은 분명 자신의 죄를 외치는 회계의 눈물이었다.
그 때의 청소년들은 현재의 청소년들보다는 순진한 면도 많았다.
그러나 그날 밤 어떤 형아와 어떤 누나는 또 섹스를 했다.
7.
처음으로 천식이 나를 덥쳤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열이 39도까지 올라 갔었다.
내가 나쁜 아이라서 하느님이 흉측한 악마를 보내 내 목을 조르고 내 몸을 불덩이 속에 던져 넣어서 내게 벌을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에 질렸다.
무섭고 아프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되던간에 빨리 이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깨어나니 병원 침대였다.
엄마에게 하느님과 악마에 대해서 말했더니 엄마는 말하셨다.
하느님은 악마를 보내지 않는다고...
아픈 와중에도 많이도 헷갈렸다.
8.
여학우와 가위바위보를 하여 내가 이기면 여학우의 보지에 성냥개비를 꽂고, 여학우가 이기면 내 자지를 한 번 만진다던지 하는 식의 놀이를 창조하여 즐겼다.
9.
정말 멋진 어떤 여선생님이 배움을 준 노래... 동그라미 인가.
그 노래를 부르면서 몇 번이고 울었다.
10.
한때 피겨 스케이트가 유행이었다.
아이스 링크에서 피겨 스케이트를 타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있으면 귀여운 아가씨들이 다가와서 '같이 타실래요?'하고 유혹을 하면 손을 잡고 트랙을 도는 것이 일반적인 그림이었다.
나는 귀여운 아가씨와 매주 주말마다 그것을 즐길 때 친구 녀석은 단 한 번 매우 우울한 아가씨와 단 한 차례 한 번의 트랙을 돌았다.
11.
지금과 달리 얼굴이 동글동글할 때, 피부가 쭈욱쭉 늘어나서 뭇인간들이 자꾸 볼을 만지며 귀여워 했다.
12.
메뚜기같이 더듬이 머리를 한 상상을 초월하는 동갑의 아가씨와 첫빡을 나눴다.
1분.
13.
방학 때 공부를 하겠다고 친구들과 학교 도서관을 갔다.
공부는 절대 할리 없고 비를 맞으며 운동장에서 정말 상상을 초월할 규모의 흙댐을 만들며 놀았다.
그후 아무도 없는 교실로 와서 1번 친구는 교탁 위에서. 2번 친구는 교실 바닥에서 똥을 쌌다.
그후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교실에 남아있는 컵으로 새로 갈기 위해 칠판을 뜯어버린 벽에 똥을 발랐다.
14.
처음으로 경찰서란 곳을 방문하였다.
입술이 부어터져서 피가 꽤 흘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배운 것은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면 무조건 한대 때리고 도망갈 것.
15.
10대 시절..
술에 사정없이 꼴은 그 친구가 (친구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나보다 6살이나 위였던) 아직 신발도 벗지 않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술집에 다니는 게 좋아 죽겠지?"
뭐라 말했는지 모르지만 한창 입이 험했을 당시라 '좆까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답했을성 싶다.
그 친구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왜 그걸 그렇게 자랑하고 다녀? 좋으냐?"
항상 그랬다.
술이 취해오르면 죽음같은 비밀이라는 말을 어두에 붙이고는 그 얘기를 떠벌이고 다녔다.
어린 시절이었다는 이유로 무마하기엔 그 친구에게 정말 큰 상처가 되었으리라.
16.
그 당시에 친구들은 핫도그를 즐겨먹었다.
내가 원한 것은 가장 비싼 핫도그 하나가 아니라 별로 비싸지 않은 핫도그 두 개였다.
한손에 하나씩 들고 다니며 번갈아 가면서 양손의 것을 한입씩 먹곤 했었다.
핫도그가 맛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사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냥 가진 자의 여유를 과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17.
생일날 촛불을 켜고 노래 부르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다.
남의 생일상에서는 온갖 재롱을 다 떠는 주제에 말이다.
어느 생일 어느 약속 장소에 갔더니 테이블에 케잌이 올려져있었다.
모여있는 친구들의 시선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아 씨발 짜증나게. 이런거 싫다니까. 존나게 못 알아먹어. 대가리가 빠가냐?"
더 뭐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케잌 밑에 내가 존나 가지고 싶어했던 씨디가 깔려있었다.
촛불을 끄고 케잌을 얼굴에 문지르고 씨디를 안겨주며 fin.
그들의 시나리오였으리라.
씨디를 보고 미안한 감이 덜컥 들었다.
수습하려 했으나 그날은 역시 개판이 되었다.
"개같은 새끼야.. 그 성질 때문에 언젠가 날 죽이고 말껄? 술집년이라는 욕은 왜 안했어?"
그 친구가 (친구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나보다 6살이나 위였던) 내게 말했던 것 같다.
18.
처음으로 베이스를 배웠다.
고동색 베이스도 생겼다.
집안 곳곳에 있던 상당량의 현찰을 횡령하고, 내 주위의 값나가되 별로 가까이 두고싶지 않은 일련의 부속물들을 팔아제낀 결과였다.
그 죄악의 결과물을 들고 숭배하던 선배에게 달려가서 앞뒤 따질것도 없이 선배의 중고 베이스를 들고 와버렸다.
선배는 왠지 미안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당시에는 베이스를 사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덜커덕 샀을 뿐이다.
일단 구입하고 나니까 뭐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뭘 알아야 치지...
다시 아버지의 서재 등에서 상당량의 현금을 추가 공출하여 교재들을 구입했다.
19.
박모군이 절규를 하며 분노했었던 그 도시락 강탈사건.
본인이 까먹었다.
씨발놈아 도시락 뚜껑 닫아가며 몰래 밥 쳐먹지 말라는 경고였다.
20.
양모군이 여자 친구와의 헤어진 사건.
사실 본인이 문제였다.
이유는 뻔한 이유이다.
21.
한 방에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은 성질 더럽기가 끝없을 때의 그 시절에 이성을 잃게 하기엔 충분했다.
이성을 잃으면 오히려 차분해 지는 것이 나의 특성이다.
깨워 일으켜서 한 마디 뱉고는 집으로 왔다.
"씨발 창녀 근성이 어디 가?"
어떤 오해가 있는지 따윈 시야 밖이었다.
xx년 xx월 xx일
그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없었다.
내 애인도 아니었고 그날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대로 있었다.
왜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22.
엄마 차를 훔쳐서 장기간 몰고 다녔었다.
오토라서 다행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기어 변속하는 것에 환장해있던 터라 매뉴얼 방식이었더라면 분명 난 신경 쇠약에 걸렸을 것이다.
23.
후덥지근한 7월 중순 무렵이었다.
그 친구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을 때는..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했다.
눈을 감고 몇 달이나 생각했다.
눈을 감고 떠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것 같은 그런 기분.
지나온 시간만큼 앞으로 지나가버릴 시간도 그냥 훌쩍 지나가 버릴것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현실감 있게 느껴질 때의 기분.
결국 시간 속에서 모든 게 지워질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이 지나치게 현실감있게 느껴질 때의 기분.
대상 없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 때의 기분.
그런 좆같은 기분. 다른 이들도 가끔씩 느끼는가?
24.
그 당시.
나는 나 자신을 생환하지 못한 3루 베이스 주자라고 여겼었다.
25.
김모군 눈싸움 사건.
눈싸움할 때 눈 안에 돌넣고 던진 새끼.
본인이다.
씨발놈아 다시는 고자질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26.
그 여자에 관한 기억은 이제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
지나고 나면 모든 기억이, 심지어는 좆같았던 기억까지도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좋았던 추억으로 채색되곤 하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27.
그리고...
인간은 참으로 간교하다.
28.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먼 훗날 쓴다.
잿더미 속 타다만 신문지 조각같은 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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