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간호사가 물었다.
"가족분께 연락드릴까요?"
세원은 고개를 저었다.
"연락할 분이 전혀 없으세요?"
그 질문에 그는 잠시 아득한 기억 저편을 헤집었다.
있었다.
아들과 딸의 번호도, 손자들의 번호도 떠올랐다.
하지만 곧 체념했다.
처음에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고, 그다음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미안함 때문이었으며, 나중에는 너무 늦었다는 잔인한 자각 때문이었다.
아내가 죽어가던 그 오래전의 오후에도 그러했다.
그날 그는 해외에 있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받지 않았다.
회의 중이었다.
전화가 다시 걸려왔을 때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전화에는 짜증을 느꼈다.
그리고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아내는 그날 숨을 거두었다.
그는 귀국 비행기에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날 이후 세원은 광기 어린 집착으로 죽음을 피해 달아났다.
아내를 방치했다는 지독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그 죽음이라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혹은 언젠가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 그날의 전화벨 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을 울릴까 두려워서였는지, 그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돈은 그에게 있어 시간을 사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었다.
그는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공장기, 부분적 항노화, 거로테라퓨틱스 약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부터 세포 리프로그래밍을 통한 제한적 역노화까지 가능해졌고 그는 그 첨단의 유산들도 어김없이 돈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다 그는 믿게 되었다.
영생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가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러나 몸은 언제나 먼저 알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가락이 한 박자 굼뜨게 움직였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면 무릎에서 마치 낡은 목재 문이 열리는 듯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물을 마시려 컵을 들면 손목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간호사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의 떨림이었지만 그는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기 몸뚱아리를 평생 뒤집어 쓰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런 작은 배신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세원은 몸의 변화를 누구보다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평생 건강과 장수를 핑계로 갖은 돈을 쏟아부어 왔으니.
처음에는 건강검진이었다.
보통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선물로 주는 호화로운 종합건강검진 패키지에 자신을 위해 매년 값을 치렀다.
사소한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찾아냈고, 혈관이 막히기 전에 청소했으며, 장기가 늙기 전에 약으로 붙들어 놓았다.
약으로도 부족하면 시술을 받았고, 시술로도 부족하면 장기를 교체했다.
세원의 몸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것들이 원래의 것이 아닌 것들로 대체되어 왔다.
가슴 속에는 인공 심장이 있었다.
혈관에는 혈전 생성을 막는 미세한 순환식 장치들이 있었고, 신장에는 여과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전자의 불필요한 고리를 잘라내 재배열했고, 특이한 미생물의 힘을 빌려 텔로미어의 마디를 연장했다.
눈의 수정체도, 관절도, 치아도, 곳곳의 신경 다발도 오래전에 교체되었다.
한때 그의 몸이었던 것과 지금 그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 사이에는 이제 거의 친족 관계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의사들은 그것을 의료공학의 쾌거이자 놀라운 성공이라 불렀다.
그가 처음 이 병원에 환자로 등록되었을 때 의사들은 기록표에 적힌 그의 나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의 몸을 진찰한 의사들은 납득하게 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보고 운 좋게도 명이 길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웃었다.
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이었다.
의사들은 그를 볼 때마다 말했다.
아직 괜찮습니다, 아직 가능합니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는 아직이라는 그 말을 좋아했다.
그 단어에는 미래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의사들은 그 단어를 쓰지 않았다.
마지막 시술이 끝난 뒤 담당의가 차트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돈으로 억지로 잡아맨 수명은 삶이 아니라 질기게 썩어가는 연명에 지나지 않았다.
변형된 세포는 기형적인 형상으로 증식했고 기워 붙인 유전자는 신체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현대 의학이 조립해 낸 허약한 생명 연장의 성벽이 인류가 마침내 도달한 생물학의 절벽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병실의 슬라이딩 도어가 유압음을 내며 열릴 때마다 세원의 빛바랜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쩌면 혹시라도 하는 아주 비겁한 기대일까.
그러나 드나드는 것은 간호사나 간호 로봇 또는 요양보호사 뿐이었다.
그가 기대하는 가족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생명을 영원히 사유하겠다는 그의 미친 집착 속에서 돈만을 이정표 삼아 병원과 연구소를 전전하던 아비의 뒷모습을 보며 자식들은 마음 속에서 그를 장사지낸지 오래였다.
그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질 거액의 자산은 아비의 유골함이나 다름없었다.
세원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아마도 빠르면 몇 분 후, 길어야 수십 분 후에는 더는 죽음을 거스를 수 없는 반의식 상태에 빠지게 되리라.
그토록 가혹하게 옭아매던 생에 대한 미련이 막상 종말의 문턱에 다다르자 허무한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참으로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죽지 않기 위해 모든 유대와 온기를 던져버렸으나 마침내 그가 도달한 곳은 고립이라는 이름의 무덤이었다.
그때 병실 한켠의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던 광고가 중단되고 긴급특보가 전해졌다.
화면 속에 등장한 앵커의 목소리가 흥분에 떨리고 있었다.
세원은 갖은 힘을 쥐어짜 화면으로 천천히 눈을 돌렸다.
“오늘 국제 표준시 오후 6시 9분, 국제생명윤리위원회는 인간의 생물학적 사망을 사실상 제거하는 전신 오그먼테이션 시술의 상용화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생체공학연맹이 방금 전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서 성공을 거두고 전 인류를 대상으로 최종 승인되었다는 역사적인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제한적인 노화 지연과 수명 연장, 이 지루한 시대는 오늘로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습니다. 생체 조직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남을 것입니다.”
카메라는 이내 희열에 찬 연구진들을 조명했다.
“장기 전체를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인공 생체 조직으로 대체하고 신경계를 양자 인공지능 네트워크와 결합하는 이 시술을 통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죽음의 불가능화'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질병도, 세포의 마모도, 세월이 가져오는 죽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오늘로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카메라는 다시 도심으로 전환됐다.
밤하늘을 찢으며 피어나는 폭죽과 레이저 쇼, 서로를 껴안고 울부짖는 수백만의 이파리 같은 대중들.
그곳은 진정한 영생을 축하하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원은 멍하니 그 눈부신 광경을 응시했다.
그 전신 오그먼테이션의 천문학적인 비용?
그에게는 호주머니 속 먼지에 불과했다.
인류가 도달한 그 완벽한 영생의 티켓을 수백 번을 거듭해 사고도 남을 부가 그의 계좌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부는 단 몇 분이라는 잔인한 시차 앞에 무용지물이 된 터였다.
영생의 시대를 맞이한 도시의 화려한 폭죽 빛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차가운 병실 천장 위에 알록달록한 잔상을 덧없이 그렸다.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전 인류의 함성은 영원을 향한 찬가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거대한 소음과 빛의 찬란함 한가운데서 세원의 방은 외면당한 채 차가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세원의 찌그러진 두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회한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만했던 삶에 대한 허탈함, 지독한 고독, 그리고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후회가 엉킨 한 줄기의 탄식이었다.
세상이 광란의 환호성으로 뒤흔들리던 바로 그 순간, 늙은 파우스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칠흑 같은 암전 속에서 젊은 아내의 잔상이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여행 가자.”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래.”
아내가 물었다.
“언제?”
“다음에 시간 나면.”
다음에, 나중에, 조금 있다가, 지금 바쁘니까.
입버릇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유의미한 삶의 순간들을 나중으로 유예했다.
사랑도, 속죄도, 여행도, 가족도.
입맞춤을 바라며 손을 잡던 아내의 손 대신 그때의 오만한 분신은 서류 가방을 쥔 채 아내의 온기를 거부했다.
세원은 시공간을 넘어 비틀거리는 입술을 겨우 우물거리며 아내에게 가장 늦어버린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
한 줄기 눈물이 비탈진 뺨을 타고 흘렀다.
스크린 속의 앵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아하고 격조 높은 음성으로 선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병실은 가혹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 문을 열고 찾아오는 이는 끝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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