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밍은 원래 C1의 소박한 꿈에서 시작된 애견미용실이었다.
간판에는 흰 바탕에 검정 글씨로 구르밍이라고 적혀 있었다.
개점 후 점차 고객이 늘더니 언젠가부터 가게 안에서는 클리퍼와 드라이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강아지가 짖고, 견주는 미안하다며 웃고, C1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털을 쓸어 담았다.
하루는 한 고객이 말했다.
“선생님, 얘 털이 너무 많이 빠져서 제 허파가 털로 가득 찼어요. 제 요도에도 털이 잔뜩 있어요.”
C1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개를 키우면서 털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 많죠. 개라는 게 원래 그래요.”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간 C1은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개라는 게 원래 그렇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대단히 편리했다.
털이 빠지는 것도 원래 그렇고,
털이 엉키는 것도 원래 그렇고,
털을 치우는 것도 원래 그렇고,
몇 주 뒤 또 미용을 해야 하는 것도 원래 그렇다.
그 말은 모든 불편을 설명해주었지만, 아무것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C1은 다음 날 아침 가게 문을 열기 전에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어제 치웠는데도 털이 있었다.
방금 청소했는데도 또 있었다.
그녀는 한참 그것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은 결국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다시 자랄 것을 잘라내고, 다시 자라면 또 잘라내는 일.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자라지 않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C1은 그날 결심했다.
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버리겠다고.
며칠 뒤 구르밍의 간판 아래에는 작은 문구가 하나 붙었다.
‘영구제모‘
털이 다시 자라지 않는 미용.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정말 영구적이에요?”
“네.”
“얼마나 오래 가요?”
“영구적으로요.”
C1이 말하는 영구제모는 기존의 어떤 제모보다 확실했다.
털만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털이 자라는 근원 자체를 없애는 것.
즉, 가죽을 벗겨내는 것이었다.
털이라는 문제를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게 만드는 구르밍의 새로운 미용법이자 시술이었다.
간판을 본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구르밍이 등록된 플랫폼에는 후기가 쏟아졌다.
“정말 영구적이에요. 다시는 미용실 갈 일이 없어요.”
별 다섯 개.
또 별 다섯 개.
그리고 또 별 다섯 개.
연예인들이 개를 데리고 왔다.
인플루언서들이 시술 후 사진을 올렸다.
인터넷에는 새로운 자랑거리가 등장했다.
털 없는 삶.
사람들은 개를 산책시키며 말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말하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랑스럽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애는 구르밍했어요.”
“우리 애도요.”
급기야 구르밍을 하지 않는 견주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개에게 털이 있다는 것은 이제 단순한 생김새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도 털 있어?”
그 질문에는 묘한 경멸이 섞여 있었다.
털이 있다는 것은 관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미용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어쩌면 사랑이 부족하다는 뜻까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길에서 털이 복슬복슬한 개를 보면 개보다 견주를 먼저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구르밍을 하지 않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의 표시처럼 여겨졌다.
그 무렵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출연한 구르밍의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걸렸다.
“사랑한다면 관리하지 마세요. 영원히 예뻐지게 해주세요.”
구르밍은 어느새 동네 미용실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트렌드이자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C1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는 털을 없애는 회사가 아니에요.”
기자가 물었다.
“그럼 어떤 일을 하시죠?”
“관리할 필요 자체를 없애죠.”
사람들은 그 문장을 좋아했다.
경영대학원에서는 구르밍을 성공 사례로 소개했고, 광고회사들은 C1의 말을 슬로건으로 바꾸어 팔았다.
관리할 필요를 없앤다.
그것이 바로 구르밍의 철학이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영구제모를 한 개들은 털 때문에 생기던 문제를 거의 모두 해결했다.
털이 빠지지 않았다.
털이 엉키지 않았다.
털을 밀 필요도 없었다.
미용을 위해 다시 구르밍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생활은 별로 가벼워지지 않았다.
개는 여전히 밥을 먹었다.
분수구토를 했다.
아팠다.
분수설사를 했다.
발정이 났다.
견주의 팔과 다리에 붕가붕가를 했다.
산책을 해야 했다.
온갖 흙먼지를 달고 다녔다.
늙었다.
똥꼬스키를 탔다.
사람이 출근하면 기다렸다.
사람이 여행을 가면 맡길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살아있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C1에게 말했다.
“대표님.”
“네.”
“털은 없어졌잖아요.”
“네.”
“그런데 왜 할 일이 이렇게 많죠?”
C1은 잠자코 있었다.
고객은 웃으며 덧붙였다.
“이상하네요. 저는 저희 애가 털이 있을 땐 털 때문에 힘든 줄 알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C1도 웃었다.
하지만 고객이 돌아간 뒤에도 그 말은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털 때문에 힘든 줄 알았다.
그날 밤 C1은 예전의 광고 문구를 다시 찾아보았다.
관리할 필요를 없앱니다.
그녀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질문을 바꿨다.
털을 없애면, 털을 관리할 필요 없어졌다.
그렇다면 개를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C1은 그 생각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구르밍의 서비스 보고서를 다시 펼쳐 보았다.
영구제모.
한 번 시술하면 끝.
재방문 없음.
고객 만족도 최고.
C1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들이 만든 것은 미용 서비스가 아니었다.
‘끝내는 법’을 파는 서비스였다.
털이 다시 자라는 일을 끝내고, 관리해야 하는 일을 끝내고, 무언가 할 일이 계속 돌아오는 것을 끝내는 것.
그렇다면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C1은 펜을 들었다.
그리고 내부 기획서의 제목을 적었다.
구르밍 2.0
처음부터 개를 없애는 사업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C1은 먼저 반려동물 장례업체들을 조사했다.
사람들은 개가 죽으면 장례를 치렀다.
사진을 남겼다.
유골을 보관했다.
좋았던 날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흙이나 하늘로 돌려보냈다.
C1은 그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죽음 뒤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관리가 따라붙었다.
장례식장을 알아봐야 했다.
화장장을 찾아야 했다.
무엇을 남길지 결정해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 떠나보낼지도 정해야 했다.
C1은 생각했다.
이것도 결국 관리 아닌가.
그리고 구르밍은 그 관리마저 없애기로 했다.
처음 나온 2단계는 개를 관리해야 하는 필요를 없애는 서비스였다.
고객들은 의외로 쉽게 받아들였다.
이미 구르밍에서 반려견의 털을 영구적으로 없애는 시술을 선택한 견주들이었다.
그들에게 구르밍은 이제 “귀찮고 반복되는 일을 한 번에 끝내주는 곳”이었다.
그들은 2단계도 선택했다.
한동안 종이 위에 펜 끝을 멈춘 C1이 두 줄을 적어내려갔다.
1단계 - 가죽 제거
2단계 - 개 제거
직원이 말했다.
“대표님, 이걸 정말 서비스하시려고요?”
C1은 자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결국 똑같아.”
“뭔데요?”
“관리할 필요가 없는 삶.”
“그래도 개를 없애는 건…”
C1이 웃었다.
“그러니까 1단계가 먼저였잖아.”
그리고 그 밑에 덧붙였다.
관리의 필요를 끝냅니다.
그 순간 C1은 자신이 만든 논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처음으로 정확하게 이해했다.
1단계는 털을 없앴다.
그러면 털을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다.
2단계는 개를 화장해 떠나보낸다.
그러면 개를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웠다.
구르밍은 2단계를 서서히 확장했다.
처음에는 늙고 병든 개를 떠나보내는 사람들만 찾아왔다.
그러나 서비스의 의미는 점차 달라졌다.
사람들은 구르밍을 찾아와 물었다.
“얘가 아직 건강하긴 한데요.”
C1은 말했다.
“네.”
“그래도 관리가 힘들어지면 마지막도 부탁드려도 되죠?”
“그럼요, 물론이죠.”
“그러면 마음이 좀 놓이네요.”
그 말이 중요했다.
사람들은 마지막을 미리 마련해 두면, 현재의 부담도 조금 가벼워진다고 생각했다.
구르밍은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출시했다.
1단계에서는 털 문제를 끝낸다.
2단계에서는 반려생활의 관리 문제까지 맡긴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끝을 알고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했다.
예전의 반려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서 무거웠다면 구르밍 이후의 반려는 끝이 예약되어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개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관리하기 힘들면 구르밍에서 보내주면 되잖아.”
그 말은 처음에는 안심이었다.
그다음에는 상식이 되었다.
마침내는 계획이 되었다.
어떤 부부는 첫아이를 낳고 구르밍에서 개를 떠나보냈다.
사람들이 물었다.
“다음 개는 안 키워?”
부부는 웃으며 대답했다.
“한 마리면 충분했어요.”
그 말은 아주 괜찮은 문장처럼 들렸다.
욕심이 없고, 책임감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한 생으로 충분한 사랑.
구르밍은 그 문장을 광고에 썼다.
사람들은 한 번 충분히 사랑했으니 됐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개를 새로 들이지 않았다.
바쁜 직장인은 개를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말했다.
“나중에 책임 못 질 바엔 안 키우는 게 낫죠.”
누군가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도 키워보면 좋아.”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사람들은 계산부터 했다.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지, 얼마나 자주 돌봐야 하는지.
그리고 계산이 끝나면 말했다.
“굳이?”
그 한마디였다.
굳이?
개는 그렇게 멸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개를 죽여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새 개를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 년이 흘렀다.
들개조차 희귀해졌다.
이십 년이 흘렀다.
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갔다.
삼십 년이 흘렀다.
마지막 번식장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유기견 문제가 해결됐다고 했다.
동물병원의 부담이 줄었다고 했다.
도시의 민원이 감소했다고 했다.
청소업체의 반려동물 관련 업무도 줄었다.
사료회사는 다른 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어느 해, 세계에 남아 있던 마지막 개 한 마리가 구르밍의 2단계를 거쳐 하늘로 떠났다.
뉴스에는 오래전 개의 사진이 나왔다.
복슬복슬한 얼굴.
커다란 눈.
사람들은 잠시 바라보았다.
“귀엽다.”
그러다 금새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른 일에 몰두했다.
그날 구르밍 본사의 매출표에는 처음으로 매출액 0원이 찍혔다.
C1은 그 표를 보고 미소지었다.
1단계 고객이 없었다.
털이 있는 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2단계 고객도 없었다.
개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르밍의 모든 서비스가 완벽하게 끝난 것이다.
구르밍은 역사상 처음으로 반려견을 키우는 데 따르는 문제를 영원히 해결지었다.
그날 밤 C1은 창업 당시의 낡은 서류 상자를 꺼냈다.
사업자등록증.
첫 계약서.
첫 후기.
그리고 가게 이름을 정하던 날 적어 놓은 메모 한 장.
C1은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딱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구르밍.
C1은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가게를 처음 열던 날이었다.
친구가 물었다.
“왜 구르밍이야?”
C1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루밍에서 따왔지.”
“심플하고 괜찮은 이름이네.”
C1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녁 하늘에 구름이 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보니… 구름이 된다는 뜻이 됐네.”
그 이름은 이상할 만큼 정확했다.
구르밍.
처음에는 개를 다듬는다는 뜻이었다.
그다음에는 털을 영원히 없앤다는 뜻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개를 화장해 연기와 함께 하늘로 떠나보낸다는 뜻이 되었다.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구르밍이었구나.”
한참 뒤 다시 말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C1은 빈 가게를 바라보았다.
클리퍼도 멈췄다.
드라이어도 멈췄다.
털도 없었다.
개도 없었다.
그녀는 처음 가게를 열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개의 털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털을 없앴다.
그러자 관리가 남았다.
그래서 관리의 끝을 만들었다.
그러자 개가 남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처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털 한 올이었는데 마지막에 사라진 것은 개라는 종 전체였다.
C1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읊조렸다.
“영구적이네.”
밤하늘에 구름 한 덩어리가 천천히 흘러갔다.
개들은 모두 떠났고 서비스는 이제 과거형이다.
하지만 구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넣기소년의 신변잡기 > 탕비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C2 (0) | 2026.09.22 |
|---|---|
| 524 (0) | 2026.09.18 |
| 첫 만남 이야기 (2) | 2021.11.12 |
| 많이 추운 날에는 훗카이도가 생각납니다 (0) | 2020.01.13 |
| 처음 (0) | 2019.10.13 |
| 오래 전의 낯선 이들이 그리울 때 (0) | 2019.03.17 |
| 제가 기차를 탔습니다 (0) | 2019.03.11 |
| 벗어날 수 없는 (The Endless, 2017) 한글 자막 (4) | 2018.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