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이름들을 좋아하면서도 끝끝내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다.
나의 기쁨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이름들이기도 했다.
나는 가뭄이 들었을 때의 나막신과 같아서 아무 쓸모 없이 여겨지다가 장마가 질 때면 그제서야 쓰일 뿐이었다.
하지만 빈곤한 어떤 기억들을 누군가가 차마 버리지 못 하는 것처럼, 나는 고이고이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해서 다가갈 수 없는 것, 어쩌면 그런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 오전에 벼르고 벼르던 책을 읽는 것처럼 그네들은 앞으로는 바라던 진실과 풍요로운 사실만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는 것, 그렇게 변해가는 것, 그게 어쩌면 청춘과는 점점 동떨어져가는 보편적인 성장이자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마치 마술과도 같이 시간을 견디는 힘을 얻게 된다.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하고 나면 자신의 무언가를 저당잡혀서 하루는 벌써 지나가 있다.
봄, 여름, 가을. 싸늘하지만 결코 아리지만은 않았던 가을 저녁에 공기를 볼에 느끼면서 나는 길을 걸었다.
자그마한 옷가게들, 몇 번이나 담배를 사러 들렀던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편의점, 인도와 구분이 없는 좁은 차도, 후미진 곳에 그득하던 손님 없던 술집들.. 나는 낡아버린 당시의 괴로움을 서서히 떨구고 있다.
다시 누군가와 둘이 함께 하는 인생을 맞이하면서, 내 젊은 날의 저녁에 매몰차게 내버렸던 감정들을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갈 많은 날들의 아주 작은 디딤판이 될 것이다.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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