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의 취지
잡지에 실렸다거나 꽤 인지도 있다고 알려진 하몬 유통업자들의 글을 확인해보았다.
한국 내 하몬 유통업체와 업자들 중 단 한 곳도 하몬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안내하는 곳은 없으며, 더구나 각종 온라인 백과사전도 영문 위키피디아에 기록된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번역이나 의역을 해둔 수준에 그친다.
용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본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잘못된 정보를 제시하고, 여전히 하몬에 대해서는 무지한 대중들을 대상으로 저급, 저질, 저가의 하몬을 미사어구를 동원해 고급으로 포장하여 열 배 안팎의 마진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한국의 일부 마트들에 낮은 등급의 세라노가 비교적 낮은 가격에 입점되었으나 관세, 유통비, 인건비를 따져보아도 여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
본편에서는 하몬에 대한 개괄을 싣고, 다음 편에서 스페인과 유럽 연합 내 하몬의 유통 구조와 한국에도 유통되고 있는 하몬의 스페인 내 가격, 한국에서의 가격 등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물론 언제 이어서 쓸지는 내 마음이다.
2. 하몬의 뜻
반으로 쪼겐 크로와상 혹은 식빵 사이에 끼워먹는 얄팍한 샌드위치 햄이나, 캔에 들어있는 런천미트와 스팸 등을 모두 하몬이라고 부를 수 있듯이 그 뜻은 햄이다.
햄의 스페인식 명칭이 바로 하몬이라는 얘기인데, 스페인 전통 방식의 햄만으로 한정을 시키면 바로 이걸 하몬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하몬의 숙성 방식
돼지 뒷다리를 통채로 잘라 실내에서도 차가운 온도가 유지되는 장소에 거꾸로 매달아 (발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둔 채로 아래쪽에는 작은 종지를 끼워둔다.
곰팡이가 많이 슬지 않도록 정제된 돼지 기름을 종종 발라주면서 염장을 위해 굵은 소금을 발라준다.
적어도 6개월에서 최장 18개월 동안 육질이 수축하면서 빠져나오는 기름이 종지에 고이므로 종종 종지를 비워준다.
그 이상 장기 숙성하는 경우는 자연 방사선을 이용해 풍미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숙성이 모두 끝나면 실온에서 천장에 걸어둔채 통채로 종이 포장하여 팔리기도 하고, 식사에 전식 혹은 사이드디시로 곁들이거나 술안주로도 얇게 저며진 것이 팔리기도 하며, 업체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숙성시킨 것을 브랜드화하여 유통시키기도 한다.
4. 하몬이 만들어진 이유
냉장고가 없던 시절, 스페인의 중부와 남부 지방처럼 삭풍이 사하라 사막 지대부터 올라오고 일조량이 많아 굉장히 건조하고 더운 지역 등에서는 음식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지가 최대 관건이었다.
열량 보충을 위하면서 동시에 부패를 막을 수 있도록 설탕을 잔뜩 넣은 대표적인 항해 시대의 장기 보관식인 카스테라(소바오sobao, 포르투갈 에스뽄조수esponjoso)가 만들어졌고, 단백질을 보충하면서 동시에 부패를 막을 수 있도록 염장 음식인 살치차salchicha, 하몬jamón, 빨레따paleta 등이 만들어졌다.
5. 하몬의 종자
1) 이베리꼬ibérico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해있다.
이베리아 반도península ibérica, 이베리아ibéria의 남성형 형용사형을 ibérico라고 부르며, 스페인어에서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대체로 명사의 뒤에 위치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토종 흑돼지로 만든 하몬을 하몬 이베리꼬jamón ibérico라고 부른다.
스페인이 로마 제국의 속주로 있던 기원전의 시점부터 하몬 이베리꼬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단순히 하몬 이베리꼬라고 부르는 것은 구별에 있어서 혼선이 있다는 이유로 10년도 더 전에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다만 다음 항에 열거된 것들 중 이베리꼬가 표기되는 것들은 반드시 두 가지 요건이 뒤따른다.
전통 흑돼지의 혈통을 50프로 이상 지니면서 최소 3년 이상 숙성.
2) 세라노serrano
주로 덴마크나 핀란드 등 북유럽산 백돼지인 란드라스 종이나 미국에서 아프리카산을 상업용으로 개량한 적퇘지인 듀락 저지 종 등의 외래종을 수입하여 주로 고원 목초지나 구릉산지에서 기르는 돼지를 세라노로 분류한다.
스페인어로 세까데로secadero라고 불리는 하몬을 건조숙성하는 건조창고 또한 높은 고도에 지어진다.
때문에 이 하몬을 산에서 만드는 햄이라고도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세라노serrano는 산맥을 뜻하는 시에라sierra의 형용사형이다.
대체로 배합사료를 먹여 키운다.
스페인과 유럽 연합 내에서는 비교적 싼 햄에 속한다.
다만 유럽 연합 외에서는 가공육을 수출입하는 과정에서의 높은 관세율이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만드는 업체에 따라서 레세르바reserva, 꾸라도curado, 엑스트라extra로 이름 짓기도 한다
레세르바가 영어의 리저브 등급으로 오인되기 쉬운데, 단순히 상업적 마케팅을 위해 붙여진 이름이지 등급이나 질과는 관련 없다.
설령 등급이 있다 하더라도 분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
6. 하몬의 여러 종류
스페인은 여러 왕국이 합해진 나라다보니 지역별 관념, 관습, 언어가 다양하고 때에 따라 굉장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하몬은 지방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불리는데, 발렌시아, 까딸루냐, 아라곤 지방에서는 뻬르닐,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샤몬, 바스크, 나바라 지방에서는 우르다야즈피코라고 부른다.
1) 하몬 이베리꼬 데 베요따jamón ibérico de bellota (혹은 데 몬따녜라de montañera)
베요따bellota는 도토리의 스페인어 단어로, 살이 오르는 시기에 대체로 도토리만을 먹인다.
돼지 스스로도 도토리에 환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육질에서도 강한 도토리 향이 난다.
스페인 중부 지방으로부터 서쪽 포르투갈 국경으로 가는 길목에 떡갈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에 주로 많다.
2) 하몬 이베리꼬 데 쎄보jamón ibérico de cebo (혹은 데 깜뽀de campo)
깜뽀campo는 들판, 목초지, 농촌 정도의 뜻으로, 이에 해당하는 돼지는 대체로 목초지에서 방목되어진다.
먹이의 대부분을 자연에서 감당한다.
3) 하몬 아우마도jamón ahumado
까스띠야 이 레온 지방provincia de castilla y leon과 엑스뜨레마두라 지방provincia de extremadura에서 주로 소비되는 훈연 처리된 종류다.
아무래도 훈제다보니 일반 하몬에 비해 다소 건조한 느낌이 있는데 이는 싱가폴의 비첸향 육포와 식감이 비슷하다.
4) 빨레따paleta ibérica 혹은 빨레띠야paletilla
이건 뒷다리를 쓰는 하몬과 달리 앞다리로 만든 햄이다.
7. 하몬과 비슷한 것들
하몬은 아래 설명할 프랑스의 잠봉, 포르투갈의 쁘리준뚜, 이탈리아의 프로슈또와도 비슷하지만 한 가지 도드라지는 차이는 돼지의 종자를 육안으로 구별하기 위해 하몬은 발톱이 붙어있는 발목 아래 부분을 남겨두는 것이다.
하몬 이베리꼬는 토종 흑돼지를 사용하므로 발톱이 거멓다.
1) 이탈리아 남티롤 지방의 스뻬깔또speck alto
노간주나무의 가지를 태운 약간의 훈연이 가해지고 후추, 로즈마리 등의 향신료가 쓰인다.
훈연의 온도는 20도를 넘기지 않는다.
소금은 하몬에 비해 훨씬 적게 쓰인다.
숙성은 하몬과 비슷한 조건의 실내 저온이지만 통풍이 반드시 잘 되는 곳이라는 조건이 더 따라붙는다.
숙성 기간은 하몬에 비해 많이 짧은 평균 22주다.
2) 중국 저장성 진화햄, 장시성 안푸햄
하몬을 포함한 피를 남기는 종류와 달리 다리를 깊숙히 반으로 갈라 피를 모두 뺀다.
가염은 박테리아 증식을 막기 위해 5도에서 10도 미만의 온도에서 예닐곱 번 반복하여 이뤄지며, 이후 4시간 이상 정제수에 담궈 불린 다음 문질러 간단한 세척이 이루어진다.
직후에는 16시간 이상을 다시 물에 불리고나서 액화된 기름을 빼내기 위해 햇볕에 말린다.
이제 상품화를 시키기 위해 최소 6달 숙성한 다음 향의 적정선을 유지하고 안정화를 위해 얇은 식물성 기름의 코팅을 지속시킨다.
비가열 상태로 먹기보다는 국이나 탕에 주로 쓰인다.
3)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 지방과 바스크 지방의 바욘 데 잠봉
업자나 업체에 따라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하몬과 달리 잠봉은 정해진 규칙과 규격 안에서만 생산된다.
숙성 온도 조건은 섭씨 6도 내지 8도, 1월 말이나 2월 초까지 건조실에 보관하며, 이후 절단 부위의 씰링을 위해 정제된 돼지 기름을 바르고, 따뜻해지는 3월 내지 5월까지 중량이 8에서 9킬로그람이 되도록 계절의 온도를 이용하여 수분을 날린다.
시중 유통을 위한 상품은 대체로 9, 10개월 가량 숙성시킨다.
4) 독일 남서부 슈바르츠발트 지방의 슈바르츠밸더 슁켄
코리앤더!가 들어간다!
완전된 것은 하몬과 겉보기엔 비슷한데 보통 독일에서는 일종의 면식인 린젠 밋 슈패츨레에 민찌로 만들어 곁들이거나 아인토프 수프에 미트볼 형태로 서빙된다.
5) 독일 서부 베스트팔렌 지방의 베스트팰리셔 슁켄
스페인의 깜뽀 종류 돼지와 비슷하게 주로 도토리를 먹인다.
다만 노간주나무의 가지와 너도밤나무를 태워 훈향을 입힌다.
또한 스페인과 비슷하게 치즈와 같이 즐기며 실제로도 하몬과 비슷하다.
20세기 중반에 유통되기 시작한 짧은 역사를 볼 때 유럽 서부나 남부에 존재하던 기존의 햄을 벤치마킹 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6) 이탈리아에서 주로 북부인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과프리울리 베네치아 쥴리아 지방에서 생산되는 프로슈또
굳이 돼지에만 한정돼지 않고 멧돼지, 양 등의 뒷다리를 쓰기도 한다.
숙성 기간은 스페인에 준할 정도로 9개월 이상 2년까지도 숙성을 시킨다.
숙성 기간 동안 하몬과는 조금 다르게 과한 수분을 제거하고 압력을 가하며 (그러나 피는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젠틀한 압력) 소금을 발랐다가 세척하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통풍이 잘 되면서 일광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건조시킨다.
안띠빠스따가 유명하고 보통 그리시니나 멜론, 혹은 아스파라거스와 콩류와 함께 서빙되는 게 일반적이다.
스위스에서도 많이 팔리는 삼띰보까처럼 쌈의 형태로 익히기도 한다.
삼띰보까는 이탈리아 방언에서 나온 말로 salt’ im bocca, 스페인어로 풀면 salto en la boca, 입 안에서 점프한다는 뜻이다.
7) 몬테네그로의 녜구스키 프르숫
생김새와 식감에서 잠봉이나 하몬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숙성은 야외 산지에서 구름이 많을 때 산바람을 맞히며 숙성시킨다.
8) 포르투갈의 쁘리준뚜
전국에 걸쳐 생산되지만 특히 북부의 샤비스와 남부의 알란떼쥬 것이 유명하다.
브라질에서는 대체로 쁘레준뚜로 발음하거나 브라질 식으로 피암브리라고 주로 부른다.
불가타 라틴어의 뻬르숭뚜스에서 유래가 됐는데 고기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뜻의 단어라서 아무도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8. 여담
시중에서 구입한 하몬은 수하물과 기내 반입 모두 전면 금지된 품목이다.
따라서 유럽연합 외부로 반출이 안 되며 적발시 압수된다.
다만 공항내 면세점에 판매 중인 하몬은 구입 및 반출 가능.
알겠느냐?
1부 끝.
'왕너구리의 메세타 고원에 불 붙이기 > 김밥지옥 (먹이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고] 요즘 스페인의 수제버거 (0) | 2018.09.28 |
---|